[me] 19세 청춘의 가슴앓이와 동의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천안문 사태와 불 같은 로맨스를 포개 놓은 '여름 궁전'. 소재의 민감함으로 중국에서는 상영중지 조치됐다.

만약 혁명은 사랑과 같은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이 영화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를 소재로 한 로우 예 감독의 ‘여름 궁전’이다. 2006년 칸 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아시아 영화다. 당시 중국 정부는 영화의 중국 상영은 물론이고, 5년간 감독의 중국 입국과 중국 내 영화 제작을 금지했다. 허가 없이 해외영화제에서 상영했다는 이유였다.

 물론 진짜 이유는 껄끄러운 소재 자체에 있다는 추측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영화는 천안문 사태를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청춘의 사랑과 방황의 원경에 시대배경으로 슬쩍 풀어놓을 뿐이다. 사태에 대한 묘사도 직접적이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진공상태 멜로로 오해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천안문 사태 혹은 그같은 사회 변혁의 기운이란 불가해한 사랑, 청춘의 신열 같은 것이라고 말하니 말이다.

 사실 혁명과 정치를 성과 사랑으로 풀어가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다. ‘성의 해방=정치의 해방’이라는 익숙한 화법이다. ‘여름 궁전’에서도 주인공 남녀의 성적 분방함은 80년 이후 극에 달한 중국의 개방을 암시하는 장치로 쓰였다. 자연 영화의 노출 수위가 꽤 높다.

 89년 베이징. 대학 신입생 유훙(레이 하오)은 인기만점의 남학생 저우 웨이(구오 샤오둥)와 불같은 사랑에 빠진다. 열정적인 둘의 관계는 늘 위태롭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고 이들 역시 시위대에 합류한다. 사태가 끝난 후 둘과 친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영화는 사태 이후 두 사람의 삶을 꾸준히 쫓아간다. 이들이 잠시 재회하는 결말에까지 10여 년 넘는 세월이 흐른다. 세상이 달라지고 두사람도 변해간다. 그리고 어디에도 평화는 없다.

 감독은 사회적 이슈를 멜로의 틀에 담은 것에 대해 “천안문 사태의 전개 과정과 발생 배경은 매우 복잡하고, 한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닮았다. 사건의 격렬함이 사랑의 강도와 똑같다는 얘기”라고 답한 바 있다. 그는 또 당시를 “젊은 사람들은 로맨티시즘에 빠져 있고 중국은 더 큰 세상으로 발돋움하던, 로맨틱한 시대”라고 돌아봤다.

 후반부 내용이 동어반복적이고 인물들의 방황이 지나치게 감상적이지만 ‘변혁 세대’의 후일담으로서 가치를 깎아내릴 정도는 아니다. 특히 비슷한 시기와 경험을 가진 우리 관객들에게는 남다른 울림을 줄 듯하다.

 로우 예 감독은 ‘스틸 라이프’의 지아장커와 함께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다. ‘슈주’ ‘자줏빛 나비’로 몽환적인 색채와 풍부한 감성을 선보였다.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며, 10년간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 남자의 얘기를 그린 신작 ‘라스트 아워’의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13일 개봉. 18세 관람가

주목! 이 장면 청춘의 사랑과 방황으로 혁명을 돌아보기. 감독의 이런 시선은 영화 초반부 유홍의 일기에서 잘 드러난다. “벗어나려고 해도 도망갈 수 없었으니 그걸 사랑이라고 할밖에.”

양성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