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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 두번 늘렸지만 끝내 「반쪽국회」/토라진 여야 제갈길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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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강경론 우세 야 “UR 비준때 보자”/여 「줄것」 없어 고민… 청와대 “법대로”/상무대 증인 평행선… 국정조사 어려워
상무대 국정조사 증인선정 협상에 실패한 여야가 끝내 총리 임명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반쪽국회를 연출함에 따라 정국은 감정 쌓인 여야의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빠져들게 됐다.
그러나 여야의 몸싸움 충돌을 피하고 공석중이던 총리자리를 메움으로써 정부와 여당은 심기일전,흐트러진 민심수습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여서 그 효험에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29일 오후 7시가 조금 지난 시간 이영덕 총리내정자에 대한 국회임명동의안이 통과되었다는 박관용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고 기꺼워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민주당의 불참에 아쉬움을 가지면서도 격돌없이 처리된 것을 다행스러워 했다는게 한 측근의 전언이다.
이 측근은 지난해 12월 예산안 파동때도 김 대통령이 절대 무리를 않도록 지시한바 있음에도 현장(국회)에서의 판단 잘못으로 「단독강행­실패­망신」이라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던 일을 상기하며 앞으로의 국정운영은 법규정에 따라 단호히 이뤄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대상이 정치권이건,올해 국정목표인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의 구체화 과정에서건 이 원칙은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대통령이 30일 이 총리를 비롯한 전국무위원과 청와대 수석 등이 참석한 확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기강 확립과 절도있는 사회를 강조한 것도 이같은 의지표시라는 것이다.
청와대의 다른 고위관계자는 앞으로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노력이 경주될 것이라고 전하면서 정치권 문제는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기본으로 하되 내년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앞두고 깨끗한 정치풍토를 흐리는 인사에 대해서는 정치개혁법에 따라 엄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민자당에 대해서는 이날 내각의 인화와 단합을 촉구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폭넓은 「탕평책」이 구체화될 것이라는 말로 민정·공화계에 대한 배려 조치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내각운용과 관련,이 관계자는 「앞으로 내각이 중심이 돼 업무의 기획에서 발표까지를 맡게 될 것」이라며 청와대 독주의 국정운영이 지양될 것임을 밝혔다. 김 대통령도 매사에 청와대가 나섬으로써 내각이 무기력해지고,청와대가 모든 비판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현실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상무대 국정조사 증인 등 현안 협상에 실패한채 총리 임명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제갈길」로 갈라섬에 따라 당분간 정국엔 냉기류가 흐를 전망이다.
이미 여야는 반쪽국회에 대한 책임을 서로 상대에게 전가하며 비난전에 열중하고 있어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야당내 온건론의 입지가 극히 좁아진 상태에서 UR 비준이란 험준한 언덕이 앞에 놓여 있어 자칫 태풍권에 휘말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불씨를 안고 이월된 상무대 국정조사건과 한약업사 정치자금제공 시비 등 현안은 쌓여만 가는데 여권이 야당에 줄 것이 별로 없다는 현실도 여야 갈등의 장기화를 예감케 한다.
민주당은 일단 이번 주말을 계기로 전열을 정비한뒤 다음주부터 독자적 진상규명작업,당보를 통한 대국민 직접홍보 등 원외정치도 불사한다는 엄포속에 대여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이기택대표는 30일 상무대 의혹을 다루기 위한 국회소집 재추진의사를 밝히면서 『진상규명을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쓰겠다』고 전의를 숨기지 않았다. 반면 여권은 총리인준 동의안의 통과와 30일의 개각을 계기로 옆(야당과의 협상)보다는 앞(새 내각 출발)을 보고 달릴 방침이다. 여당은 5월말 14대 후반기 원구성·국회개혁·행정구역개편 등 현안들이 계기가 되어 대화가 재개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증인선정에 대한 여야간 이견을 절충하지 못한채 임시국회가 폐회됨으로써 상무대 국정조사 자체가 당분간 불투명해졌다.
특히 이 문제는 국회파행·반쪽국회의 주범으로 꼽힐 정도로 이해와 견해차이가 큰 사안이라 전망이 밝지 않다.
여야는 일단 법사위 계획서 작성소위와 막후 총무접촉을 시도하고 타협안이 마련되면 임시국회를 소집,계획서 승인과 본격적인 국정조사에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계획서 작성부터 절벽이라 쉽지 않다.
여야간 최대쟁점은 핵심증인의 채택여부.
민주당은 요구대상 51명중 김영삼대통령을 뺀 50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증언대에 불러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중엔 민자당에서 한사코 반대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윤환·김영일의원,서석재 전 의원,이종구 전 국방장관,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이진삼 전 육참총장·정구영 전 민정수석 등이 들어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선 서면조사도 좋다는 입장이다.
민자당은 이같은 요구가 정치적인 복선을 깔고 있다고 보며 정치인이 증언대에 서게 될때의 부담감도 있어 응할 수 없다는게 확고한 입장이다.
양당은 반쪽국회에 대한 비판여론 등을 의식,협상의 모양새를 갖추는 한편 이견의 절충점을 찾아나가는 탐색을 계속하겠지만 낙관하긴 어렵다. 협상실패를 부른 여야의 속사정과 주변 정황이 하나도 바뀐게 없기 때문이다.<김현일·김현종·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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