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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경제활동 해야 여권 신장, 빈곤 퇴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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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6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67·사진) 그라민은행 총재. 그는 빈민층에게 담보 없이 돈을 빌려줘 자활을 돕는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대출)운동으로 730만 명의 방글라데시 여성을 구제한 사람이다.

12~14일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여성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한 유누스 박사는 10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여성에 대한 대출이 빈곤퇴출에 보다 효과적이란 것을 경험적으로 확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여성들에게 돈을 빌려주려고 했을 때 그들이 ‘나는 돈을 모르니까 남편에게 대출해주세요’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희는 이같은 생각이 수백년 동안 사회가 여성들에게 주입해 온 편견이라고 생각하고 여성들에게 직접 돈을 대출해줬지요.”

유누스 박사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76년, 대학에 인접한 마을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지켜보다가 그라민 은행을 만들고 이 같은 대출제도를 고안했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사람들 가운데 여성이 1%도 안되는 데다 자신의 제자들이 사업을 하면서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시달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들을 해방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은행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요즘 그라민은행에서 대출받는 사람의 97%는 여성이에요. 이들은 돈을 벌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정을 일으켜 세워요. 여권이 신장되고 폭발적이던 인구증가율도 매우 감소했으며 방글라데시의 빈곤율까지 매년 2%씩 감소하고 있지요.”

 그라민 은행에서 돈을 빌린 여성들은 농장에 고용돼 품을 팔던 것에서 벗어나 쌀을 사서 팔거나 닭을 키으면서 자본을 늘려갔다. 최근들어 방글라데시 여성들은 첨단 기술 분야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라민은행이 설립한 휴대전화 회사에서 대출금으로 휴대전화를 구입해 농민들에게 대여하는 사업을 벌이는 등 사업 영역을 늘려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유누스 박사는 “불과 몇년 전 대부분 사람들은 숫자도 모르는 여성들이 어떻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겠냐고 비웃었지만, 지금은 그 여성들이 세계의 시차를 이해하고 전화코드까지 이해하는 등 전문가가 됐다”고 소개하며 크게 웃었다.

 그는 14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성장했다.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도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빈곤퇴치에 헌신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에 유학해 밴더빌트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인은 방글라데시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며 큰딸(모니카 유누스)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자주 서는 유명 오페라 가수다.

 “딸이(유명해) 어디 있는지는 웹사이트를 봐야 안다”고 말해 좌중을 웃긴 그는 “딸이 ‘희망을 위해 노래하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난한 이들을 돕는 기금을 모으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고 자랑했다.

 세계여성포럼에서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과 함께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그는 13일 개최되는 개막식에서 기조 강연을 한다. 11일에는 이화여대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도 받는다.  

글=문경란 여성전문기자 moonk21<@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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