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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43. 'PET 왕국'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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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필자와 함께 PET 연구센터 제안서를 만들었던 2000년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에릭 리차드 칸델 교수.

1979년 컬럼비아대학 방사선과에는 다른 대학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드림팀이 만들어졌다. 나와 하버드대학에서 막 스카우트 해 온 신경과학자 에릭 리차드 칸델 교수, 컬럼비아에 있었던 사덱 힐랄 교수 등 3명을 주축으로 한 ‘PET 연구센터’ 건설 추진팀이다. 칸델 교수는 뇌가 어떻게 기억을 하는가를 연구해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나보다 5살 많은 칸델 교수는 그 당시부터 아이디어와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끊임없이 내놓았었다.

 나는 PET 전문가로, 칸델 교수는 PET를 이용한 뇌 과학 연구 전문가로, 힐랄 교수는 방사선학 전문가로서 각자의 분야에서는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한 사람들이었다. 힐랄과 칸델 교수는 뇌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PET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간파한 선구자들이었다. 내가 개발한 원형 PET의 가능성과 나의 존재 가치를 제대로 알고 정교수로 영입한 것이기도 했다. 칸델 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신경과학의 원리’ 표지 사진으로 PET 영상을 쓰는 등 PET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었다.

 드림팀은 PET센터 건립을 위한 제안서를 미국 국립의료원(NIH)에 제출해서 자금을 지원 받을 요량이었다. 미국 국립의료원은 바이오와 의학 분야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그 자금 규모는 연간 수조원에 이른다. 드림팀이 만든 제안서는 센터 건립에 600만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정리했다. 그 제안서를 만드는 데만 1년 가까이 걸렸다.

제안서의 주요 내용은 PET의 활용 부분도 있었지만 하드웨어의 성능 향상으로 영상의 품질,운용의 편리성 등에 관한 게 많아 제안서 작성에 내가 주된 역할을 했다. 앞으로 뇌 과학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그에 대한 연구 기반 시설로 PET 센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제안서였다. PET가 분자 수준에서 뇌 신경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인체 영상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제안서는 NIH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PET 왕국’ 건설의 꿈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NIH는 제안서의 내용을 그냥 쓰레통에 버리지 않고 ‘야곱 자비트(Jacob Javit) 뇌과학 상’이라는 상과 함께 PET 기초 연구비로 7년 동안 10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고 알려왔다. 그 연구비의 대부분은 나에게 할당됐다. 당초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게 적지 않은 액수였다. 교수 중에 그렇게 많은 연구비를 받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NIH가 그 때 PET 연구 센터 설립 자금을 지원했더라면 PET 전성 시대를 10년 이상 앞당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 지나간 일이긴 하지만 인류의 보건 복지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나는 그 연구비를 PET 성능 개량과 구형 (Spherical PET) PET 연구, 한국을 오가며 연구할 수 있는 종잣 돈으로 요긴하게 사용했다. 너무 앞선 연구 아이디어는 이런 시련을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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