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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총선현장을가다>黑白차별보다 더 무서운건 黑黑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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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그곳은 전쟁이 훑고 지나간 폐허였다.
검붉은 핏자국으로 물든 도로,길거리를 뒤덮은 유리 파편과 보도블록 조각들,휴지 조각처럼 갈기갈기 찢겨진 차량들,또 다른 폭탄테러의 공포에 사로잡힌 겁먹은 검은 얼굴들.
24,25일 연 이틀째 요하네스버그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폭력 현장은 투표가 시작된 26일에도 벌겋게 상흔을 드러낸채 흑인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다.
폭력은 흑인들의 역사를 굴절시킨 백인들의 수단이었다.
「체념」은 3백42년 백인통치가 만들어낸 흑인들의 삶의 지혜였다. 차별은 흑인들을 질식시킬듯 죄고 있다.노예의 삶을 강요하던 黑白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50년대 들어와 완화됐고 아파르트헤이트는 90년대와서 엷어지기는 했지만 차별은 끈끈이처럼 요동칠 수록 삶을 어렵게 할 뿐이다.
흑인중간관리는 아예 없다.말단이나 그보다 한계급 높은 곳에 앉는 정도로 출세는 끝이다.
「땅파는 99명은 흑인,감독은 백인 1명」이라는 공사장의 원칙은 지배구조에 철저히 반영돼 있다.
『흑백싸움이 나면 흑인은 철창 신세지만 백인들은 금방 풀려납니다.식당에 가면 일하는 사람은 흑인,먹는 사람은 백인입니다.
그뿐입니까 백인마을에는 버스가 없어요.걸어다닐 필요가 없으니까요.』 폭탄테러 현장부근에서 만난 40대의 흑인은 분통이 터진다는듯 목청을 높였다.더 비참한 것은「黑黑갈등」이다.
기묘하게도 일부 흑인들은 넬슨 만델라의 집권에 대해 부정적이다. 남아공의 흑인집단거주지에는「소웨토 베벌리힐스」라는 곳이 있다. 1평정도되는 함석집에서 6~7명이 바글거리며 사는 한편에 자리잡은「소웨토 베벌리힐스」는 분명 흑인이 살지만 깨끗한 2층집에 벤츠나 BMW같은 차가 들어있는 차고가 있다.
소웨토의 보통흑인들이「소웨토 마피아」라고 부르는 부류들이 사는 지역이다.이들은 백인과 손을 잡고 술.마약.매춘으로 검은돈을 주무른다.
이들은 흑인공화국이 자신들의 부.지위를 약화시킬지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체제를 반대한다.
백인이 마련해준 4개자치주의 지배세력들도 겉으로는「흑인만의 자치」를 외치지만 내심은 기득권의 박탈을 두려워해 선거를 반대해왔다. 개인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백인 밑에서 안정된 직장을 갖고있는 흑인들도 만델라 정부가 들어서면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들어 정치적 폭력사태로 사망한 4천명 가까운 사람들은 바로 이같은 기득권을 둘러싼 黑黑갈등의 희생자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새 체제가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열쇠인지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요하네스버그 미용실에 근무하는 크리스 자스퍼양(23)은『총선이 끝나면 좋아질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지만 백인들이 점점 더 위험스러워지고 흑인들끼리 갈등도 커져 총선이 없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라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선거 첫날의 분위기는 이번 선거는「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이번 선거를 계기로 3백42년 굴종에서 벗어나 보통흑인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흑인들의 의지가 충만하고 있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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