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얼굴 없는 주식투자 귀재 구본호씨는 누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호 19면

얼굴이 알려진 것도 아니다. 뚜렷한 실적도 없다. 중견 물류회사인 범한판토스의 대주주라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직함도 없다. 나이도 이제 갓 서른두 살(1975년생)이다. 최근 주식시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구본호(32)씨를 가리키는 말이다. 미디어솔루션(현 레드캡투어)·액티패스·엠피씨·동일철강 등 그가 사들인 주식마다 고공행진을 하면서 증시에서는 ‘미다스 손’으로 통한다. 하지만 구씨 자신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는 어떤 인물이고, 무슨 그림을 그리면서 거침없는 기업 사냥에 나서는 것일까?

LG家 3세 … 범한물류 배당금이 종자 #구씨 측근 “큰 기업으로 키우는 과정일 뿐, LG家와는 구분해 달라”

‘LG가(家)의 3세.’

구본호씨에게 따라붙는 첫째 수식어다. 이는 ‘뚜렷한 재료 없이’ 그가 손댄 주식을 끌어올리는 동력이기도 하다. 정작 LG 측에 구씨가 어떤 인물이냐고 물어보면 “회사에 다닌 적이 없다. 로열패밀리로 특별 관리하지 않고 있다”며 “LG가라는 표현이 부담스럽다”는 대답을 되풀이할 뿐이다. 구씨가 2대 주주로 있는 범한판토스에서도 베일에 가려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회사의 황선도 상무는 “회사에 이력서를 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구씨는 정확히 말해 LG가의 방계 3세다. 그의 부친은 고(故) 구자헌 범한물류(현 범한판토스) 회장이다. 할아버지가 고 구정회 LG 창업고문으로,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구본무(62) LG그룹 회장과 6촌간인 셈이다.<그림 참조>

고 구정회 고문은 창업 초기 아이디어맨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특히 화장품 전문가인 김준환씨를 영입해 LG(당시 락희화학)가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도록 한 공신이다. LG의 전신인 ‘럭키’라는 브랜드도 그의 작품이었다. 구 고문은 다섯 형제를 두었다. 그중 셋째가 구본호씨의 아버지인 구자헌 회장이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물류·여행업을 시작해 부친 못지않게 아이디어가 많았던 듯하다. 지금은 여행업계에서 보편화된 ‘노 팁 노 쇼핑(No tip no shopping)’ 상품도 그가 처음 선보였다.

구본호씨는 어려서는 일본에서, 나이가 들어서는 미국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황선도 상무는 “그는 뉴욕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최근엔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사업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한 지인도 “노브레인·크라잉넛 같은 국내 록가수의 음악을 즐긴다”며 “하지만 기업 경영이나 금융에도 관심이 많다”고 전한다.

구씨가 대주주로 있는 범한판토스는 650여 임직원이 94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큰 기업이다. 2000년까지만 해도 매출액이 800억원대에 불과했으나 LG그룹의 물류부문을 아웃소싱하면서 급성장했다. 그는 1999년 아버지인 구자헌씨가 사망하면서 회사 지분을 상속받았다. 당시 어머니인 조금숙(57)씨와 함께 46.2%, 53.8%씩 받았다. 전문경영인인 여상구씨가 경영을 책임지고 어머니가 상근고문으로 있다. 이 회사에서 나오는 배당금이 구씨의 투자 종자돈이 됐다. 지난 3년 동안 구씨가 회사에서 받은 배당금은 2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조씨 모자는 150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구씨가 증시에서 주목을 끈 것은 2005년께부터다. 더존비즈온(당시 대동)·소프트포럼 등 코스닥 기업 지분을 사들여 10억원대의 차익을 올린 것. 구씨 측은 “당시는 단순 투자 차원이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때가 워밍업이었다면 이후 구씨의 투자 행보는 정보기술(IT)부터 굴뚝 기업까지 거침없다. 지난해 9월 이후 구씨 측은 미디어솔루션·액티패스·엠피씨·동일철강 등에 500여억원을 투자해 2000억원대 평가이익을 거뒀다.<그림 참조> 한 번 투자할 때마다 “일주일 연속 상한가는 기본, 최대 10배는 오른다” “일단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증시에 ‘구본호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지난달 24일 인수한 동일철강은 1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7일 종가가 110만원을 넘어서 ‘신(新)황제주’로 떠올랐다.

그런데 주로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한다는 구씨가 어떻게 이런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었을까. ‘구본호팀’에서 그 궁금증이 일부 해소된다. 구씨의 투자회사는 ‘구본호팀’에서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팀이라기보다는 구씨의 사적 네트워크에 가깝다. 구씨의 한 지인은 “수도권 사립 S대 이사장의 아들인 이모씨, 대기업 CEO를 지낸 한나라당 김모 국회의원의 아들 김모씨, 경기도 수원 인근에서 골프 리조트를 경영하는 L사의 인척 박모씨 등이 함께 움직인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팀에서 종목을 결정하면 구씨 등이 투자하는 ‘원격 시스템’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구씨 측은 “미디어솔루션·액티패스 등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와 있는 매물을 잡은 것이고 엠피씨는 단순 투자”라고 밝혔다. 다만 동일철강은 이 회사의 장인화 대표와 구씨가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장 대표는 중앙SUNDAY와 전화 통화에서 “(구씨와) 잘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왜’에 모아진다. 구씨의 거침없는 투자 행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재계와 증권가 일부에선 재벌 2~3세들이 ‘자기 영역’을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구씨 측 역시 “재벌의 방계회사를 경영하는 데 머물지 않고 기업을 더 키우고 싶다”며 “(잇따른 M&A는) 기업의 파이를 키우는 과정으로 이해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뜻에서 구씨는 “LG가와 구분 짓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씨는 “물류·여행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업, 여기에다 투자 업무를 더해 회사를 키우고 싶다”고 밝혀 왔다는 것이다. 결국 구씨의 행보와 LG그룹 간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 전문가는 “그것이 재벌가 3세의 새로운 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구씨는 경쟁력 있는 물류·여행 회사를 경영하고 있어 ‘알맹이’가 있다. 그 알맹이를 상장기업에 붙이면 기업가치를 더 키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가 급등으로 과도한 자본이익을 얻은 측면이 있으나 구씨 입장에서는 ‘(기업가치를 높여)이겨 놓고 시작하는’ 노련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도의 머니게임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증권가 일부에선 “구씨가 언제 시세 차익을 거둬들일지 모른다. ‘재벌의 이름’을 이용해 손쉽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있는 게 사실이다. 동서대 이장희(경영학) 교수는 “그가 투자한 기업을 보면 미디어솔루션을 빼고는 뚜렷한 실적 개선이 기대되는 사례가 없다”며 “유력 재벌가의 자손이 투자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뛰는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구씨 측에서도 ‘부담스러운’ 주가 흐름을 우려하는 눈치다. 황선도 상무는 “증시가 활황인 데다 기업의 미래가치가 반영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급등으로 이해한다”며 “이에 대해 본인도 난감해하고 있을뿐더러 집안 어른들의 타이름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구씨를 불러 주가 급등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구씨가 투자한 종목이 이상 급등함에 따라 절차에 따라 투자경보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더욱 주목받는 것은 구씨의 행보다. 재벌가 후예의 ‘현란한 데뷔’를 보게 될지, 아니면 ‘또 한 명의 먹튀’를 보게 될지는 전적으로 구씨에게 달려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