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은의 통신주 입찰물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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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의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최근 한국통신의 정부지분 매각과정에서 「입찰대행은행」인 외환은행이 보여준 행위는 자율성 확보를 외치고 있는 우리 금융권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외환은행이 자신의 입찰참여와 관련해 이제까지 한 발표와 해명과정은 한마디로 사리에 맞지 않는다.
외환은행은 21일 한국통신 주식 90만주를 주당 3만4천6백원에 써넣어 탈락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곧바로 주당 3만4천8백원에 해당하는 31억3천2백만원을 입찰보증금으로 넣었다고 한은에 보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외환은행은 청약가격과 입찰보증금의 차이를,다른 기관투자가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한 「전략」이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는 미세한 코스트 차이에도 민감한 은행의 관행으로 보거나,이같은 「전략」이 결국 다른 기관투자가의 응찰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상황론으로 보거나 납득할 수 없는 변명이었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재무부와 은행감독원이 조사에 착수하고 나서자 외환은행의 해명은 하루만에 바뀌었다. 주당 3만4천8백원에 써넣어 하한선으로 낙찰받게 됐으나 자신이 낙찰받을 경우 일반투자가들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여론에 따라 이를 포기,낙찰가를 낮췄다는 것이다. 또 외환은행의 입찰가를 밝히라는 여론에 따라 「편의상」 응찰가를 3만4천6백원으로 바꿔 발표한 것이지 전산자료에는 3만4천8백원으로 나와있다는 주장이다. 신용을 생명으로 한다는 은행에서 「선의」라는 미명아래 이런 숫자놀음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외완은행은 다른 입찰자의 입찰정보를 알고 자신의 응찰가를 산정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또한 쉽게 믿어주기는 힘든 구석이 많다. 더 큰 문제는 입찰보증금과 주식대금을 일시 예치받는 것만으로도 수십억원을 앉아서 벌 수 있는 「입찰대행은행」이 직접 다량입찰에 나섰다는 「도덕적 불감증」이다. 이번 입찰에는 증권과 투신을 제외한 기관투자가의 입찰이 허용됐고,입찰대행은행이라 해서 참여할 수 없다는 규정이 없어서 입찰에 참여했다는 외환은행의 행동은 법이전에 도덕적으로 옳게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앞으로의 조사과정에서 입찰정보의 사전 인지 및 입찰가 조작여부는 분명히 가려져야 한다. 재무부 또한 외환은행에 입찰에 참여치 말 것을 당부했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이것만으로 감독소홀의 책임을 면키 어렵다. 기본적으로 대행기관 지정때 입찰제한을 명시했어야 하며,그런 규정이 없더라고 이를 막았어야 옳다. 행정지도는 그럴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이래가지고서는 금융자율화도 공기업 민영화도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충고」마저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싶은,참으로 우울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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