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기자의풍향계] 민심은 손학규, 당심은 정동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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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전체의 80%)에서 432표를 이겼지만 여론조사(20%)에서 2884표를 뒤졌다. 그 바람에 패했다. 만약 경선 룰에 여론조사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뻔했다.

5일 발표된 대통합민주신당의 컷오프(예비경선) 결과를 들여다보면 누가 신당의 대선 후보가 되느냐 역시 경선 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컷오프는 국민 여론조사와 선거인단 여론조사의 두 부분으로 이뤄졌는데 국민 여론조사는 민심에, 선거인단 여론조사는 당심에 가깝다. 손학규 후보는 국민 여론조사에서 2460표를 얻어 2207표에 그친 정동영 후보를 눌렀지만 선거인단 여론조사에선 정 후보(2339표)가 손 후보(2274표)에게 앞섰다. 그래서 '민심=손학규' '당심=정동영'의 구도가 확인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컷오프는 1인2표제였기 때문에 민심.당심의 차이가 별로 없었지만 1인1표제가 적용될 본경선에선 양자의 차이가 확 벌어질 것이란 게 정설이다.

또 본경선에선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이 실시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신당은 당원이 아니라도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공무원 등을 빼곤 누구나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경선 흥행을 노려 민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실제론 국민경선이 각 후보 진영의 조직과 인력 동원 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럴 경우 당내 기반이 제일 강한 정 후보가 유리해진다. 특히 선거인단의 지역별 할당 비율이 없어 정 후보는 자신의 호남 기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니 조직력이 약하고 지역 기반도 없는 손 후보는 본경선에서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는 데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손 후보 측의 김부겸 선대본부 부본부장은 "민심을 정확히 반영하도록 여론조사를 꼭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캠프대변인 역시 "여론조사는 양보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정 후보 측 김현미 대변인은 "본경선 때 지역 편차가 걱정되면 다른 지역 유권자가 더 많이 참여하도록 발로 뛰어 해결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정 후보 측 민병두 전략기획위원장은 "본경선 때 모바일 투표 등으로 선거인단 참여를 넓히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전제조건을 붙여 본경선 결과를 시뮬레이션하면 여론조사 비중에 따라 손.정 후보의 득표력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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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만큼 어느 한쪽이 쉽게 양보할 리 만무하다. 친노 진영에서도 이해찬 후보 측은 여론조사 반영에 부정적이지만 한명숙.유시민 후보는 유동적이다.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놓고 몇 달을 싸운 끝에 결말을 봤지만 신당은 그럴 시간도 없다. 늦어도 다음주까지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각 후보 진영은 당분간 여론조사 반영 비율을 놓고 격렬한 샅바 싸움을 하게 됐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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