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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사내 변호사 무슨 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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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법무실(윤리경영실) 소속 변호사들이 3일 내부 회의를 하고 있다. 국내 변호사 12명, 외국 변호사 14명으로 구성된 SK 법무실은 사내 법률 자문, 국제상거래 계약 법률 검토, 사내 준법감시 업무를 맡고 있다. [SK 제공]

LG그룹은 2003년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그룹 내 지주회사인 ㈜LG를 출범했다. 기존의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가 출자를 전담하는 지배구조로 탈바꿈한 것이다. LG는 또 2003년 11월에는 LS그룹, 2005년 1월에는 GS그룹의 계열분리를 각각 단행했다. 이 같은 LG그룹의 지주회사 전환방안을 찾아낸 이들이 바로 그룹 법무팀이었다.

 LG그룹 이종상 법무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 법무팀에 국내외 법률과 제도를 모두 검토해 가능한 방안을 찾아내라는 과제가 떨어졌다”고 회고했다. 당시 LG 법무팀이 찾은 방안이 새로 출범하는 지주회사 주식을 기존 계열사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법무팀은 상법과 증권거래법 관련 조항에서 찾아낸 이 모델을 갖고 법원과 금융감독원을 설득했다. 결국 LG그룹은 2001년과 2002년 각각 화학(LGCI), 전자(LGEI)계열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2003년 3월 두 계열 지주회사를 통합해 ㈜LG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대기업의 사내변호사(Inhouse Counsel)는 이처럼 소송 업무뿐 아니라 인수합병이나 기술제휴 계약 같은 기업경영 현안에 직접 참여한다.

 본지는 이 같은 사내 변호사들의 역할에 대해 대기업 최고 법무책임자(CLO)들의 생각을 들어 봤다. 이들은 사내 변호사에 대해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법률가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삼성그룹 이종왕 법률고문, LG그룹 이종상 법무팀장(상무), SK그룹의 김준호 윤리경영실장(부사장)이 서면인터뷰에 참여했다.

 

◆다른 부서와 의사소통 중요=삼성그룹 이종왕 법률고문은 “사내 변호사는 적극적으로 사업실무부서의 ‘비즈니스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업·재무·인사와 같은 다른 파트에서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법적·제도적 해법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이 고문은 “어려운 과제에 부딪히더라도 사내 실무부서를 고객 상대하듯 ‘No’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한 법적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 법무팀의 경우 차세대 LCD시장 선점을 위한 국제경쟁이 치열할 당시 소니와의 합작계약을 직접 성사시키는데 법률자문을 했다. 2004년 7월 삼성-소니 간 7세대 합작사 설립계약을 해 충남 아산 탕정공장을 세운 데 이어 지난해 7월에는 50인치 8세대 S-LCD패널 생산합작계약을 성공시켰다. 지분조건도 삼성 51% 대 소니 49%였다. SK 법무팀은 2006년 3월 인천정유 인수와 관련해 아무런 조건없이 정부의 기업결합 승인을 따냈다. 인천정유의 회사정리절차가 조기 종결되도록 마무리하는 작업을 했다.

 기업 법무팀이 기업 인수합병에서 주무부서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SK 김준호 실장은 “사내 변호사는 법률적 측면뿐 아니라 회사의 경영전략, 대내외환경을 고려해 법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기업 법무팀도 회사 조직의 일부로서 사내 다른 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 조화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글로벌시장 마인드 갖춰야=CLO들은 사내변호사들의 또 다른 과제로 “해당 기업의 국제 법률분쟁을 미리 예방하고 법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꼽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소송가액만 수억 달러에 이르는 반독점·반덤핑 사건, 집단 소송 등 예측하기 힘든 법률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시장은 국내법이 아니라 국제법이나 다른 나라 법이 적용된다.

 실제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측은 분쟁 발생 시 미국법을 토대로 한 국제 중재로 해결할 것을 명문화하자고 요구, 이를 관철시켰다. 이미 국제금융시장 거래의 90% 이상은 월스트리트가 있는 미국 뉴욕주법을 근거법률로 한다. 삼성 이종왕 고문은 “글로벌 시장이 영·미법을 준거법으로 움직이는 만큼 글로벌 기업의 사내변호사는 이들 나라의 법·제도에 잘 대처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대기업 법무팀의 역할 중 ‘준법 감시’도 중요해졌다. 회사 경영상 발생할 수 있는 불법적 요소들을 사전에 예방,더 큰 손해를 보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다.

 LG 이종상 팀장은 “기존 대기업 법무팀이 소송·분쟁이 발생한 뒤 사후적 처리에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사전에 법률 리스크를 진단·예방하는 일이 중시되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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