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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체제로/세계경제 새질서 “발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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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가트」와 달리 강력한 규제장치/그린·블루라운드도 눈앞의 태풍
12일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최종타결을 위한 1백23개국 각료회의는 각국의 무역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구속력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시대의 개막을 뜻한다.
기존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는 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국가에 대한 강제력이 없는 「평화협정」 수준이었으나 내년 1월 출범할 WTO는 규제수단을 갖는 「평화유지군」 성격이다. 결국 새로운 「세계경제헌법」이 탄생하는 것이다.
오는 15일 각국이 UR 최종의정서에 서명하게 되면 7년간 우여곡절을 겪어온 UR협상은 공식 종결된다.
WTO 출범에 따른 새로운 무역질서는 각국에 공산품·농산물·서비스시장의 개방폭을 넓힐 것을 강제하게 되며,우리도 쌀시장 개방·관세인하 등 국내시장을 몇년간에 걸쳐 상당히 더 열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그러나 각국의 무역장벽이 함께 낮아지므로 기업들에는 새로운 세계시장에의 도전기회가 생긴다.
또 무역질서를 어지럽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우리도 WTO의 힘을 빌려 규제를 가할 수 있게 된다. WTO가 국제무역분쟁에 대한 국제법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각료회의는 이같은 UR협정의 최종마무리를 하는 외에 UR이후를 대비한 포스트 UR체제도 논의하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환경을 무역과 연계시키는 그린라운드나 저임 등 노동조건이 나쁜 나라에는 무역상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블루(블루칼러의 뜻) 라운드(BR) 논의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각료회의는 이번에 WTO 산하에 「무역과 환경위원회」를 설치한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2년간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보호조치에 관해 검토,2년후 WTO 각료이사회에 보고하게 된다.
이같은 그린라운드 논의는 산업의 환경보호장치가 미흡한 후진국에 불리한 것이어서 후진국들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환경보호와 관련된 무역문제를 검토하는데 있어 재화뿐 아니라 서비스 및 지적소유권의 국제거래도 포함시킬 계획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함께 최근의 예비협상에서 선진국과 개도국간 대결양상으로 치닫던 BR 논쟁은 지난 8일 양측이 UR 최종의정서에서는 논의하지 않는다는 타협점을 찾아 일단 급한 고비를 넘기게 됐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는 15일 마라케시 각료회담에서 의정서가 채택되는대로 WTO 구성을 위한 예비회담 때부터 노동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양보를 끌어냄으로써 BR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무역을 노동과 연계시킬 수 있다는 사회조항이 삽입되지 않을 경우 의정서 서명에 거부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속에 열린 8일 회담에서 양측은 조항 삽입을 유보하는 대신 노동조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장성명으로 대체키로 합의했다.
이는 BR에 대한 철회가 아니라 일시적인 유보를 의미한다.
미키 캔터 미 무역대표부 대표는 8일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이 타협안은 WTO의 예비회담 때 노동조건과 국제무역 사이의 관계를 논의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강도높은 BR협상을 예고했다.
미국과 함께 사회조항 삽입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의 제라르 롱게 산업장관도 이날 『사회조항이 없는 국제무역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회조항은 박애조항이며 공정한 국제무역의 기본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BR가 가동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이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 등 개도국들은 남의 나라 노동조건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주권침해라며 WTO의 기능과 영역밖이라고 반격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UR협상을 마무리짓는 서명방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일본 등 주요국가들이 두 문건으로 된 UR 협정문을 놓고 선언적인 최종의정서에는 서명하고 핵심부분인 WTO 설립협정 서명은 유보하기로 해 서명이 갖는 국제법적 구속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WTO 설립협정에 서명을 하든 안하든 UR의 협상내용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 또 서명을 유보한다고 해서 이미 마무리된 협상내용을 수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최종의정서는 UR의 협상결과에 대해 총체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는 한장으로 된 서문으로 UR 협상결과를 수용하며 적법한 국내적 절차를 밟겠다는 참여국의 최종입장을 밝히는 문서다.
따라서 국내적 비준절차가 불필요한 선언형식의 문건인데 반해 WTO 합의문은 4백여쪽에 걸쳐 ▲WTO 창설 ▲분쟁해결 절차와 규범 ▲무역정책 검토기구 ▲다자간 무역합의 등 4개의 부속조항과 각료 결정 및 선언 등을 상세히 나열하고 있다.
문제는 이 WTO 설립협정에는 비준이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즉 국제법의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공문이므로 행정부가 마음대로 서명할 수 없는 국가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법적·정치적 문제 때문에 일본은 일찌감치 합의문에 대해 유보입장을 천명해놓고 있었고,미국이 의회와의 마찰소지를 감안해 이에 동조했으며,한국도 이 대열에 끼어들게 된 것이다.
WTO 설립협정 서명을 보류한 국가들은 국회 및 국민설득을 위해 국회비준 절차를 끝낸뒤 이 협정에 연내 서명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렇지만 쌀시장 개방 등 각국의 관세인하계획은 이미 협상이 끝나 확정되어 있는 것이어서 UR의 내용에는 변경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마라케시=고대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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