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한국 정부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4월에는 3국 간 첫 합동 군사훈련이 실시됐다. 3국은 이번 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인도까지 끌어들여 대규모 군사훈련을 또 벌일 예정이다. 삼각동맹 구축 작업에 하워드 총리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들이다.

3국이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 한국의 외교 당국자들은 큰 고민을 하고 있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지금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런 움직임이 더욱 구체화돼 한국이 빠진 채 미국 중심의 새 동맹 체제가 구축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 관계에 새로운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냉전 질서'가 가시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아직 작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 정치권의 보수적 흐름,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가치를 들고 동맹 관계 형성에 적극적인 호주의 움직임으로 볼 때 그런 쪽으로 일이 진행될 여지는 있다.

3국의 동맹이 현실화하면 한국은 외톨이가 될 수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아태 지역의 세력 판도가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심한 굴곡을 그렸던 한.미 관계를 두고 볼 때 예전의 동맹 관계는 복원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면서 무작정 미국으로 달려가기도 어렵다.

뉴스위크는 미.일.호주의 동맹 관계 형성 움직임을 눈앞에 둔 한국에 대해 '담 위에 선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외교적 딜레마를 시사한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외교 당국은 미.일.호주의 움직임이 '편가르기 식' 세력 재편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세계 경제권 편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미국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럼에도 한국 외교가 외부 상황을 지켜보면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궁색한 입장에 몰리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유광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