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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4집 '지금, 너에게로' 낸 말로 vs 3집 ‘예스터데이’ 낸 웅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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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윤선·말로·웅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다. 같은 재즈무대에서 활동하지만, 스타일이나 색깔은 각각 다르다. “한국에는 재능 있는 여성 재즈보컬이 많다”는 한 미국 재즈 뮤지션의 말대로 여성 재즈 보컬로만 치면 한국은 축복받은 나라다. 말로와 웅산이 나란히 새 앨범을 내놨다. 재즈의 본질에 충실해 음악 안에서 더욱 자유로워지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글=정현목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4집 '지금, 너에게로' 낸 말로

그는 데뷔 초기인 1990년대 말 ‘한국의 엘라 피츠제랄드’로 불렸다. 뛰어난 스캣 창법과 스탠더드 재즈곡을 자유롭게 해석해내는 능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2003년 ‘벚꽃 지다’로 한국 재즈의 새로운 미학을 만들더니, 결국 재즈라는 울타리를 넘어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었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36·본명 정수월)의 얘기다. 그가 4년 만에 내놓은 4집 앨범 ‘지금, 너에게로’는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이고 세련된 어법이 결합된 수작이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이 많이 약화됐다고 말했다.

 “3집 때는 정말 재즈 뮤지션이었어요. 재즈 어법과 리듬에 대한 애착이 강했죠. 우리말로 노래하는 첫 시도였으니까, 일반 가요와 차별화하기 위해 재즈 느낌을 강하게 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재즈가 아니면 어때’라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재즈가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을 털어내는 데 2년이 걸렸네요.”
 그는 앨범 타이틀 ‘지금, 너에게로’에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4년의 공백 동안 엄마가 됐고, 다섯 군데에서 강의를 하는 등 정말 바쁘게 지냈어요. 그런 일상 때문에 인생의 전부였던 음악이 점점 뒤로 밀리는 거에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앨범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지금, 너에게로’의 너는 음악 또는 음악적 열망을 의미합니다. 애를 재워놓고 새벽에 곡 작업을 했는데, ‘놀이터’ 같은 노래는 세 번이나 녹음을 했지요.”
 이번 앨범 역시 말로가 전곡을 작곡했다. 가사는 3집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주엽이 맡았다. 말로는 3집 때 이씨를 만나면서 주류 아티스트로 부상했다. 이번 앨범은 재즈에 뿌리를 깊이 박고, 아카펠라· 컨템포러리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목했다.

 그리고 드럼을 빼고, 기타와 퍼커션 위주의 미니멀한 세션으로 리듬감을 살렸다. “3집이 따뜻하고 풍성했다면, 이번 4집 앨범은 건조하면서 여백이 많은 느낌입니다. 내 곡이 갖고 있는 선율 만으로 승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8일 성균관대 새천년홀에서 신보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3, 4집 수록곡 외에 스탠더드 재즈곡도 노래한다.

 “재즈 본연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스탠더드 재즈 음반도 꼭 내고 싶어요. 클럽 공연도 다시 하고 싶습니다. 클럽이야말로 재즈 정신을 녹슬지 않게 하는 마음의 고향이거든요. 재즈 정신은 현재를 음악적으로, 가식 없이 사는 것이죠. 제가 외모를 꾸미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대중에게 보여드릴 것은 내 안에 다 들어있으니까요.” 

3집 ‘예스터데이’ 낸 웅산

 

가수 웅산(34·본명 김은영)은 국내 여성재즈 보컬리스트 중 가장 솔(Soul)적인 창법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염한 중저음의 허스키 보이스와 객석을 휘어잡는 무대 매너는 그에게 ‘가장 스타일 강한 보컬리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블루스 색채가 짙은 앨범 ‘더 블루스’ (2005)로 음악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가 가을 여자 느낌의 세 번째 앨범 ‘예스터데이(Yesterday)’를 내놓았다. 팝·발라드·블루스·포크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재즈로 재해석한 앨범이다. 전제덕의 하모니카 연주와 이주한의 트럼펫 연주가 가을 냄새를 더욱 짙게 만든다.

 “2집은 가장 웅산스러운 색깔의 앨범이었죠. 하지만 너무 강해서 일반인이 듣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저도 사실은 여자예요’라고 인사하는 거죠. 강한 스타일에 감춰진 감수성 풍부한 가을 여자의 모습을 보여드린 겁니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힘을 쫙 뺐다. 보다 편안하고 멋스러운 보컬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전체적인 사운드도 자연스럽고 어쿠스틱하다. 전제덕이 하모니카를 연주한 첫 번째 트랙 ‘아무 말 말아요’의 애잔한 분위기는 이번 앨범의 의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3곡 중 7곡을 자신이 작사·작곡했다.

 “옛 것에 대한 향수와 새로운 사운드가 결합된 재즈랄까요? 노라 존스의 음악이 재즈냐 팝이냐 논란이 많지만, 결국 이 시대의 재즈로 인정받잖아요. 재즈 뮤지션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스탠더드를 표방했지만, 지금은 나다운 음악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목소리가 주가 되는, 여백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1998년 일본 활동을 시작한 그는 현지에서 인정받는 재즈보컬로 자리잡았다. 1년에 3, 4회 정기 공연을 하고 있고, 조만간 세 번째 앨범도 낸다. 그는 11월말 일본·중국·홍콩·말레이시아 등을 아우르는 아시아 투어도 할 예정이다.

 웅산이란 이름은 그가 17세 때 불교에 귀의했을 때 얻은 법명. 2년간의 수행이 음악에 큰 도움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불교와 재즈는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수행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욕심을 내면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아요. 2년의 수행과 대학 시절 록밴드 보컬 활동이 재즈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다음 앨범은 비틀스 음악으로만 꾸미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어쿠스틱 버전과 디제잉 버전 두 가지로 말이죠. 재미있는 시도가 될 것 같아요. 아니면 내 안에 꿈틀대고 있는 록 본능이 살아나 록 음악에 도전할지도 모르죠.”(웃음)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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