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프간 인질 사태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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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프가니스탄에서 풀려난 한국인 19명이 어제 마침내 고국 땅을 밟았다. 이로써 아프간의 반(反)정부 무장세력인 탈레반에 한국인 23명이 인질로 붙잡히면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결국 2명이 희생되고, 21명이 무사귀환하는 것으로 45일 만에 막을 내렸다.

 홀가분한 심정으로 사태를 정리할 시점이 됐다고 본다. 가슴에만 담아 두고 하지 못한 말이 많았던 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혹여 사태 해결에 지장을 줄까 봐 입을 다물기도 했고, 본심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기도 했다. 이젠 솔직해질 시간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탈레반의 테러 행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당연히 책임은 탈레반에 있다. 이번 행동을 통해 탈레반은 종교의 이름을 빙자한 간악하고 잔인한 테러 세력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탈레반은 인질들이 석방되자마자 “한국인 납치가 성공적이었다”며 “인질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챙긴 몸값으로 테러에 쓸 무기를 구입할 계획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탈레반의 만행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한국 기독교계의 무리한 해외선교다. 인도적 차원의 봉사활동을 위해 현지에 갔다는 교회 측 주장을 우리가 수용했던 것은 인질들의 안위 때문이었다. 그들이 탔던 버스에서 발견된 파슈툰어로 된 성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부의 경고를 무릅쓰고, 그들은 치안이 불안한 이슬람 국가를 대상으로 무모한 선교활동을 벌임으로써 결국 국가에 엄청난 부담을 안겼다. 국제사회의 원칙을 깨고 테러 집단과 직접 협상한 데 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순진한 젊은이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공격적 선교 행태에 대한 교회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 정부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본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사태 발생 직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연내 철군 방침을 천명한 것은 경솔했다. 소중한 협상 카드를 스스로 포기한 꼴이 됐다. “한 명이라도 인명 피해가 있으면 협상은 없다”고 처음부터 확실하게 선을 그었더라면 억울한 희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다. 아프간을 여행 자제 국가로 지정할 때부터 출입국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슬람권에 대한 외교력의 한계와 전문인력 부족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자 불만스럽고,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해서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분열되고, 새로운 논쟁에 휩싸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각자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국민의 올바른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