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익명의 열정' MI6 '항상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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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리에 방한했던 마이클 헤이든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올 3월 27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 들어가는 모습이 중앙일보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CIA는 헤이든 국장의 동선 노출에 대해 한국 당국에 항의했으며 국방부는 정보 노출 관련자를 해임했다. 헤이든 국장도 귀국한 뒤 행동이 세심하지 못했다며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김민석 기자]

올 3월 27일 서울에서 정보기관장의 보안과 관련한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국가정보원의 초청으로 극비리에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헤이든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국방부 청사에 들어오다 언론에 포착된 것이다.

당시 주한미군과 미 대사관 측은 헤이든 국장을 수행하기 위해 4~5대의 경호 차량을 동원했다. 또 비상등을 켠 한국군 헌병의 호위 차량이 앞장서 안내했다. 1997~99년 유엔사 부참모장으로 한국에 근무했던 헤이든 국장이 고향에 돌아온 기분으로 국방부를 인사차 방문하면서 벌어진 요란한 움직임은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헤이든 국장을 안내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국방부 청사 입구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헤이든 국장이 김장수 국방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국방부 청사에 들어오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자 국정원은 국방부에 항의했다. 그를 초청한 국정원은 미 CIA로부터 공식 항의를 받자 헤이든의 동선을 노출한 국방부를 탓한 것이다. 그러자 국방부는 정보를 노출한 것으로 지목된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을 해임했다. 헤이든 국장도 본국으로 돌아간 뒤 세심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경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CIA 등 세계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수장이나 요원들의 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 의회 청문회 출석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김만복 국정원장처럼 작전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번에 한국인이 인질로 붙잡혔다 풀려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독일인이 아직 납치단체에 억류 중이다. 독일 정부는 겉으로는 협상 불가를 천명했지만 물밑으로는 인질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연방정보국(BND)도 사태 해결을 위해 공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독일의 정보국장이나 요원들이 노출된 경우는 지금까지 없다.

이라크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납치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해당 국가 정부들은 납치단체와의 비밀협상을 통해 거액의 몸값을 건네주고 인질을 인도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독일의 BND나 프랑스의 대외정보기관인 DGSE, 영국의 MI6, 일본의 내각정보조사실 등의 수장이나 요원들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벌인 활동을 공개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사건 해결을 위해 기관장이 직접 움직이는 경우도 프랑스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알려지지 않았다.

납치세력들이 탈레반과 같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잔혹한 테러리스트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만의 하나라도 정보기관의 개입이 드러날 경우 테러단체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연방보안국(FSB), 중국 국가안전부, 이스라엘의 모사드도 이런 원칙을 지킨다.

김민석.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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