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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른 주한미군 재배치] 1. 주한미군 재배치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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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한미군 대이동의 막이 올랐다. 올해부터 3년 동안 전방에 흩어져 있는 미 2사단이 의정부.동두천으로 합쳐지고, 2007년 말까지 한미연합사.유엔사를 비롯한 용산기지가 평택으로 빠져나간다. 미 2사단의 한강 이남 이전(2단계)도 시간문제다. 주한미군의 활동 반경은 확대되고. 한국의 독자 방위 구축은 발등의 불이 됐다. 주한미군 재배치의 의미.파장.과제를 5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 캐스퍼 와인버거는 1984년 미국은 자신의 사활이 걸린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군사력을 동원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확실하게 정의(定義)된 정치적.군사적 목표가 있고, 국민과 의회의 지지를 받을 자신이 있을 때만 군사행동을 취해야 한다." 합참의장 콜린 파월은 그 뒤 와인버거의 전략개념에, 미국이 일단 전쟁을 하기로 결정하면 초기에 압도적인 군사력을 투입해 전쟁목표를 단기간에 완수한다는 원칙을 추가했다. 이것이 20년 이상 미국의 대외 군사전략의 성격을 규정한 와인버거-파월 독트린이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와인버거-파월 독트린에 조종(弔鐘)이 울리고, 부시-럼즈펠드 독트린이 미국의 21세기 전략개념으로 부상했다. 걸프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한 파월의 '압도적인 군사력'의 개념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성공한 럼즈펠드의 '핀포인트(Targeted action)' 개념으로 바뀌었다. 2001년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폭격이 시작된 직후 럼즈펠드는 "우리는 새로운 용어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낡은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전략에 대한 신사고를 주문했다.

한마디로 미국의 전략개념은 걸프전쟁까지의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의 경박단소(輕薄短小)로 크게 전환된 것이다. 이런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무소부재(無所不在)의 테러리스트들을 상대로 한 이른바 비대칭(非對稱)의 전쟁이고,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지난 10년간의 군사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달이다.

전략문제에 정통한 정부 소식통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통신.정보.수송 분야의 능력, 미사일.폭격기의 정확도와 파괴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개선.강화됐다"고 말했다.

부시-럼즈펠드 독트린에서 거리와 숫자는 큰 의미가 없다. 장거리 수송기.전략폭격기와 고성능 미사일이 거리를 극복하고, 신형 병기의 가공할 파괴력이 줄어든 병력을 커버한다. 주둔지역이 멀고 병력은 줄어도 전력(戰力)은 강화된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미국은 해외에 주둔한 군사력을 재배치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주둔군의 규모를 줄이고, 병기체계를 최신식으로 바꾸어 나가는 계획에 착수한 것이다.

주한미군의 재배치나 감축도 부시 정부의 이런 전략개념 교체와 해외주둔 미군의 전반적인 재조정이라는 틀에서 보지 않으면 미국의 의도에 대한 오해와 안보 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거리와 숫자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전략개념은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휴전선 바로 아래 있건 평택에 있건 미군 제2사단의 전쟁 억지능력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 한.미 두 나라 군사당국자들의 판단이다.

제2사단의 이동으로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이 사라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못 본다. 하나는 서울에 최하 7만5천명, 최고 10만명의 미국인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도 군인과 똑 같은 '인질'이다. 다른 하나는 78년 한미연합사령부(CFC)가 생기면서 이미 인계철선은 의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면 연합사령부가 전쟁의 지휘본부가 되는 것이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은 예외없이 넓은 지역(Region)을 담당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만 북한이라는 하나의 적을 상대로 하나의 독립된 사령부가 하나의 전역(戰域.Theater)을 구성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 북.미관계 개선,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때는 미국 의회에서 이런 기이한 상황의 변경을 요구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미군 재배치 자체가 미군의 기능을 동북아의 기동전략군으로 바꾸는 초기 작업이라는 걱정은 현실을 앞서가는 기우다.

미국의 전략개념이 와인버거-파월 독트린에서 부시-럼즈펠드 독트린으로 바뀌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크고 무겁게 하던 전쟁을 작고 가벼운 전쟁으로 바꾸고 있다. 미국은 10년 예정으로 주한미군도 그렇게 바꾸려고 한다. 군사기술의 혁명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변화의 그림 전체를 보면 불안할 이유가 없다. 정부가 자주외교.자주국방이라고 떠벌리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재배치라는 군사기술적 문제를 정치 이슈화한 점이 더 우려스러운 일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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