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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38) 숙소 밖으로 나오며명국이 태연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웬놈의 바람이 이렇게 미친년 뭐하듯 분다냐… 어따 썰렁하네.』 고개를 돌리며 명국이 뒤따라 나오는 길남을 돌아보았다.어정어정 걸어나가며 그가 여전히 혼잣말하듯 또 중얼거렸다.
『껌껌하기는 젠장헐,그래… 무슨 소린데 넌 늙은이 잠도 못 자게 보채고 그러는 거냐.』 길남이 옆에 다가와 섰다.
『이쪽으로 좀 오세요.』 그가 공중변소 있는 쪽으로 명국을 잡아끌었다.
『어허,이제는 똥도 같이 누자는 거냐? 거기로 가봤자 뒷간 밖에 더 있어?』 그렇게 길남을 따라 숙소 뒤편으로 돌아서자마자 명국이 목소리를 낮추며 빠르게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성식이가 말입니다.』 『그래서? 그놈은 아프다고 저녁도 안 먹고 어딜 싸다니던 놈 아니냐?』 『네,그런데 그 성식이가 말입니다.』 길남이 어둠 가득한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성식이가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도망?』 『네,그녀석도 여길 튈 작정이에요.결심을 했나 봅니다.』 명국이 더욱목소리를 낮추었다.
『무슨 이야긴지 조근조근 좀 말을 해라.』 『성식이를 찾으러다녔거든요.정 아프면 병원에라도 데리고 가서 약을 좀 타서 먹일까 하구요.제가 병원의 가타야마상은 잘 알거든요.그래서 찾아다녔던 건데,그 애가 하는 말이 그게 아니에요.』 『아픈 게 꾀병이란 말이냐?』 『그건 아니고요.설사도 멎고 좀 나았다면서바람이나 쐰다고 저랑 방파제 쪽을 한바퀴 돌았는데,얘가 제 속을 털어놓는 거 아니겠어요.』 『도망을 치겠다구?』 『네.』 잠시 명국은 길남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어둠 때문에 그 눈에 불이 번쩍이고 있는 것을 길남은 보지 못했다.잠시 후,말 하나하나를 씹어뱉듯이 명국이 차갑게 물었다.
『그래서,그래서 말이다.너는 뭐라고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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