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로 연출된 「투갑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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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도박판을 덮쳐 판돈을 가로챈 경찰관과 열차내 잡상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아온 철도공안원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꼭 영화 『투갑스』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영화라면 웃어버리면 그만이지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언제까지 우리 사법공무원들은 이래야 하는 걸까. 이번 일로 해서 동료경찰관과 공안원들도 탄식했겠지만 한숨이 내쉬어지기는 일반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사법공무원들이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르고 그로 해서 신뢰를 잃게 된다면 그 최종적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일에 대해 경찰과 철도공안당국은 마땅히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뼈저린 반성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신적·도덕적 처방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사법공무원들의 탈선행위가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비리가 사회문제가 될 때마다 빠짐없이 반성과 새 출발을 다짐해왔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그런 다짐은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문제해결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중앙일보가 지난 2월14일부터 3월14일까지 17회에 걸쳐 「경찰과 시민사회」란 시리즈를 통해 외국경찰의 모습을 우리의 그것과 비교하며 소개한 것도 구체적인 현실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책당국으로부터의 반응은 아직 없는 상태다. 시리즈가 계속되는 동안 일선 경찰관이나 각계 인사들로부터는 큰 호응을 받았으나 정작 제시된 문제해결책은 현실화할 책임과 권한이 있는 정책책임자들은 처벌과 훈계나 하는 고식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과 시민사회」란 시리즈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은 사법공무원들의 공정성과 권위의 뿌리는 다른 사회부문 보다 높은 보수와 좋은 근무조건에 있다는 것이었다. 일본경찰관은 1주일에 휴무 2일과 4교대로 모두 45시간을 근무한다. 이에 비해 우리 경찰관은 휴무는 사실상 없고,2교대에 모두 95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경찰관들은 업무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다른 공무원에 비해 약 10% 높은 봉급을 받고 있다. 이런 조건을 감안하지 않고 그저 왜 일본경찰관은 이런데 우리 경찰관은 이꼴이냐는 식의 비난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도박판의 판돈을 가로챈 경찰관의 행위가 처우와 근무조건이 나쁘다고 변호될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처우와 근무조건에 대한 개선없이 도덕적 각성만을 요구해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찰은 공직사회의 쇼윈도다. 획기적인 개선안이 빨리 마련돼야 한다. 『투캅스』가 실화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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