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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덕목은 첫째도 사명감, 둘째도 사명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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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갑신년이 ‘정치 개혁의 원년’이 될 수 있을까. 지난 한 해 대선자금 수사 등 각종 정치자금비리 소식과 ‘방탄 국회’의 뻔뻔함에 질린 국민에게 2004년 벽두 신선한 충격을 준 뉴스가 있었다. 한나라당 오세훈(43)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그것이다. 吳의원은 선언문에서 “정치 현실에 정통하지 못하면서 정치를 바꿔보겠다고 덤벼든 무모함이 부끄럽고, 잘못된 길을 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묵인한 무력함이 부끄럽고, 묵인을 넘어서서 어느 사이 동화되간 무감각함이 부끄럽다”며 “저의 불출마가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했다. 그런 그의 호소는 국민들이 정치개혁에 다시 한번 희망을 갖는 계기가 됐고, 곧 다른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랐다. 설 연휴를 앞둔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세훈 의원을 만났다. 그가 불출마 선언을 한 지 어느새 보름이 지났다. -불출마 선언 이후에도 정치개혁특위 활동으로 여전히 바쁘신 것 같더군요. “한나라당측과 전체 특위 간사를 겸하고 있어요. 이번 총선의 틀을 잡는 것이니까 2월 초순까지 법안을 마무리해야죠. 설연휴가 지나는 대로 다음 주부터 스피드를 낼 겁니다. 정치인으로서 국민을 위한 마지막 의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뭔가 바뀔까요? 국회의원들이 워낙 스스로와 관련된 법안엔 관대(?)하지 않습니까. “분위기가 좋습니다. 대선자금 수사 정국과 맞물려 예상 밖의 성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선거구와 의원 정원수에 관심을 갖고 계신데, 제가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후원회제도의 개혁이야말로 파장이 클 겁니다. 속으론 건드리고 싶어하지 않는 의원들도 있지만, 일단 안만 확정되면 다른 법안과 패키지로 상정되는데다 공개표결이어서 부결시킬 수 없을 거에요. 그러면 정치 문화 수준을 10년은 끌어올릴 수 있을 겁니다.” -吳의원이 생각하는 정치 개혁의 핵심이 그것입니까. “국회의원의 특권을 과감하게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가장 큰 특권은 바로 돈인데, 1년에 3억, 선거가 있는 해엔 6억원까지 맘대로 걷을 수 있는 후원회제도가 그 요체죠. 거액의 후원금은 사실 ‘뇌물’이나 다를 바 없어요. 주는 사람은 어떨 지 몰라도 받는 사람한테는 분명히 ‘채무의식’을 심어줍니다. 현재 개인의 연간 후원 한도액이 2천만원인데, 이걸 1백만원으로 대폭 낮추자는게 한나라당의 개혁안입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5백만원까진 생각해볼 만하다는 입장을 전해왔어요. 그 정도로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전 3백만원 수준으로 낮추도록 더 노력해볼 겁니다.” -워낙 ‘스타의원’이셨지만 특히 불출마 선언 이후엔 인터뷰 참 많이 하셨죠? “하도 제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을 쏟아주니 말 하기가 겁날 정도에요. 참 넌센스죠. 제가 열심히 좋은 법안을 연구해 성과를 얻었을 때는 국회 의원들의 의정활동 평가에 묻혀 정치면 구석에 ‘잘했다’고 한마디 실어준 게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불출마 선언을 하고 나니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네요.” -하긴 그 선언 이후 “‘오사모’(오세훈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만들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 찍어주겠다”고 하는 네티즌들도 있더군요. “그렇게 격려해주시니 고맙죠. 하지만 씁쓸한 생각도 들어요. 제가 의정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할 때는 ‘당신 같은 사람이 정치를 계속 해야 한다’고 박수쳐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러다보니 저에 대해 기대하는 국민이 있다는 걸 잊고 스스로 지쳤던 거고요. 사실 16대 국회만 해도 입법활동에 열심인 의원들이 과반수는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활동에 관심을 갖고 용기를 줘야 정치 개혁도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월간중앙’ 2월호에 실린 吳의원 인터뷰 제목도 “정치하면서 행복한 적 없었다”였나 보죠? “(쓴 웃음을 지으며)마음 고생 정말 심했죠. 그렇지만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과의 경우도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기회가 됐죠. 한창 사춘기였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무심코 던지는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 등을 들으며 얼마나 상처 받았겠어요. 다행히 저와 끊임없이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잘 승화시킨 덕에 아빠를 잘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한 안목을 키우게 된 것 같아요.(그의 큰 딸은 올해 이화여대 현대무용과에 입학했고 둘째 딸은 고2가 된다.)” -이른바 ‘5,6공 정치인 퇴진론’으로 당내에서 미운털도 박히신 걸로 아는데, 이번 불출마 선언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선배들께는 제 ‘돌출행동’에 대해 죄송하단 말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저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이 겉으론 ‘어려운 결심을 했다’고 격려해주시면서도 속으론 잘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는 것도 잘 압니다. 솔직히 저 자신도 이런 식으로 그만 두는 것이 아쉽고 억울한 면이 있는 건 사실이거든요. 정치적으로 실현해보고 싶은 일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물귀신작전’같은 방법을 동원하며 제가 나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효율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공부를 하러 가실 계획인가요. “일단 미국 예일대에서 체제비와 장학금 전액을 주겠다는 4개월짜리 프로그램 제안이 들어와서 신청해놨어요. 원래 예일대 출신은 안된다는 규정이 있어 잘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그는 예일대 로스쿨 박사과정 출신이다). 잘 되면 그 이후엔 워싱턴 국책 연구소들 중 한 곳에서 더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유학을 서두르시는 이유가 불출마와 관련된 각종 소문을 잠재우려는 겁니까? 서울 시장 도전설 등도 들었는데요. “말도 안 되는 얘기에요. 지난번 서울 시장 선거 때 당시 이명박 후보가 잠시 지지율이 떨어지니까 절 정무부시장으로 내정해 러닝메이트로 이용하려고 했던 일을 이번 불출마 선언과 연결시켜 멋대로 해석한 거죠. 변호사일을 다시 시작하기 전에 재충전할 기회는 지금 밖에 없는 것 같아 서두르는 것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정계에 입문하려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정치에 입문할 때는 대국적 견지의 포부와 열정이 있고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도 사명감, 둘째도 사명감입니다. 능력은 그 다음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속된’ 기준으로 정치환경은 더 나빠질 겁니다. 그럴 수록 어떤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합니다. 그런 준비를 충분히 하고 나서 책임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吳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정권에 대해서도 “준비가 없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첫 해를 허송했다”며 쓴소리를 덧붙였다. “이 정권 들어서 가장 유행한 말이 ‘코드’와 ‘로드맵’일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가 그려온 로드맵의 종착지는 10년 후의 한국 사회가 아니라 1년 후의 총선이었어요. 물론 절대적으로 소수인 여당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젠 국민을 위해 최소 10년 이후를 내다보는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입니다.” 김정수 기자 [인간 오세훈 알기 플러스 알파-『월간 중앙』인터뷰 참조] ◇미스터 마일드=쌍커플까지 있는 그의 수려한 외모를 보고 사람들이 부드럽다며 붙여준 별명. 그는 방송이 만들어준 허상일 뿐, 자신은 독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사법시험 준비 2년 만에 합격했을 때도 얼마나 독하게 공부를 했던지 엉덩이가 의자에 닿는 부분에 종기가 생겨 대수술,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을 정도라고. ◇“내가 자네를 망쳤네”=그가 법조인의 모델로 삼았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그를 정계에 입문시킨 정치적 후견인이기도 했다. 그런 李 전 총재가 불출마 선언 후 吳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가 욕심이 나서 내가 정치판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려 주지 않아 오늘 이지경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란다. ◇콩비지 찌개=절대 안 먹는 사연이 있다. 부인 송현옥씨와는 고 2 때 과외를 같이 하면서 알게 된 후 고려대에서 다시 만나 캠퍼스 커플로 지내다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기 직전 결혼했다. 항상 새로운 요리로 애정을 표현하던 부인이 연수원 전반기 시험 전날 저녁 정성껏 만들어준 콩비지 찌개가 상했던지 밤새 설사와 고열에 시달렸다. 시험 도중 병원으로 실려가더니 결국 결시 처리됐다. 이것이 연수원 1년 유급의 내막. ◇발레=큰 딸이 어릴 때 발레를 배우는 것을 보다 발레 애호가가 됐다. 국립발레단의 운영자문위원이면서 지난해엔 발레 ‘해적’을 해설하기도 했다. 스스럼없이 페미니스트로 자칭하는 것도 딸들 때문이다. 두 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페미니즘. ◇『오래된 미래』=그가 최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헬레나 노르베라-호지 여사가 인도 라다크 지역의 주민들이 자연과 완전히 합일해 살아온 과정을 보여준 책이다. 초년병 변호사 시절 일조권 관련 소송을 맡아 2년여의 투쟁 끝에 승소, ‘환경변호사’로 유명해진 그의 독서 취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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