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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바다」 협박에도 담담한 국민/김석기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서울 불바다」 「전쟁나면 다 죽는다」는 등 지난 주말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회담에서 돌출된 북한 대표의 어처구니 없는 협박성 발언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의외로 냉담,그 원인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단 공식적인 회의장에서 적나라한 용어를 서슴없이 지꺼리는 북한 대표의 사고방식에 아연하는 반응이 주류인 것 같다.
상식 이하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저들에 대해 과연 저의가 무엇인지를 곰곰 따져보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협박」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옛날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나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과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물건 사재기나 외국비자 신청이니 뭐니 해서 한바탕 소동을 빚어왔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징후가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상변화에 가장 민감하다는 주식시장도 평일과 같은 등락폭을 기록했고,시민들도 특별한 위기감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같은 국민들의 담담함에 대한 원인분석은 여러갈래다.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국민의식의 성숙성과 국제정세 등에 대한 높은 이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계속 진행돼왔던 북핵협상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국제정세 감각을 키워온데다 내부결속과 자체 문제해결을 위해 이 협상을 이용해온 북한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중론자들은 국민들이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전쟁불감증에 걸린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다.
남북 대치를 정권에 악용한 지난 시절에 대한 반작용을 이유로 『늑대와 소년』의 우화처럼 국민들이 안보불감증에 걸려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북한의 오판과 집단 히스테리에 의한 전쟁 발발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 대표가 불쑥 던진 한마디 말로 우리 사회에 나타난 파문이 단순히 평가차원에 머무르지 말고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태발생에 대비하는 준비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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