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미국 판매주식회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화이트워터 스캔들로 한창 곤욕을 치르고 있는 美國의 클린턴대통령이 지난 2월 백악관의 루스벨트 룸에서 의기양양하게 한 건의 발표를 했다.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보잉.맥도널 더글러스 두 비행기제작회사로부터 여객기를 무려 50대,60 억달러어치나사겠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비행기 주문량이 원체 엄청난 것이긴했지만 그렇더라도 계약 내용을 비행기 회사가 아니라 백악관이 발표했다는 것은 좀 格에 맞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화이트워터사건으로 인한 곤욕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미국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밝힌 바에 따르면 클린턴 정부는 이 비행기 商談이 벌어지는 동안 고위 관리를 몇차례나 보내 사우디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등 販促활동을 벌였다고 한다.그것이 成事되었으니 생색을 낼만도 하게된 셈이 다.지난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회의가 시애틀에서 열렸을 때 클린턴 대통령과 크리스토퍼 국무장관등이 이곳에 있는 보잉사에 들러최근 유럽勢에 밀려 苦戰하고 있는 항공산업의 지원을 공개적으로약속하는등 기업지원 활동을 벌였는데 그게 성사된 것이다.
얼마전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은 의회에서 미국정부가 미국기업의 해외활동과 투자를 적극 지원할 것이며 이를 위해 10억달러의 예산을 책정하겠다고 보고했다.미국의 정부기관 또는 유관기관들이미국기업을 지원하는데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아예 예산까지 마련한 것이다.
미국 상무차관은 한 술 더 떠 외국인들은 계약을 따기 위해 뇌물공세까지 하는 판이지만 미국 기업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정부가 판촉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그는『외국정부들은 모두 自國기업의 판촉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런 慣行의 중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바야흐로 미국정부가 공공연하게 장사에 나설 것을 밝히는 시절이 된 것이다.옛날엔 日本정부가 기업의 해외활동을 지원하고,경제정보를 제공하고,외국기업의 경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으로 유명했다.「日本株式會社」라는 말도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미국정부는 그런 것이 자유주의적 세계경제질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난해온 터이다.그런데이제는 미국정부가 예산을 써가면서 기업의 판매전략을 돕겠다고 나섰으니「新美國株式會社 」가 또 하나 생겨난 셈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추세는 그동안 이미 정부의 대외활동의 한 패턴으로 확립되어온 터이지만 어느 정부도 스스로를 販賣會社로 자처하지는 않았었다.클린턴 정부는 노골적으로 그런 방침을 공개천명했을 따름인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에서 나오고 있는 경제관련 서적들도 이런 새로운 경향들을 강조하고 있다.미국의 전통적인 自由貿易이라는 이상주의적관념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이제 정부는 통화정책이나재정정책에만 매달려있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 어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다른 개발도상국처럼 기업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현 클린턴 정부에는 라이시 노동장관등 자유주의경제질서 신봉자들이 참여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린턴정부의 정책에는 國粹主義的 색깔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미국의 이런 성향은 최근 일본과의 무역분쟁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공공연 한 공갈.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多者간의 합의야 어떻든 슈퍼 301조를 대통령 긴급조치로 발동해버리고,우루과이라운드(UR)합의도 무시하고,자국상품의 관세율은 멋대로 조정해버린다.남의 나라 고용조건까지도 문제삼겠다는 內政干涉的 무역정책 을 내놓을 준비도 하고 있다.
이젠 미국이 마치 자유주의의 대변자이며 人權의 챔피언인 것처럼 보편적 가치를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무슨 다른 장삿속이 없는지 속을 좀 따져봐야할 때가 된 것이다.
***貿易전쟁 대응책 긴요 우리 정부도 최근「규제하는 정부가아니라 서비스하는 정부」라는 인식을 갖도록 경제관료들의 의식을개혁하겠다고 다짐했다.正答은 이미 나와 있었던 것인데 실천은 왜 이리 더딘지 똑같은 의식개혁 다짐이 수년래 반복되기만 한다.미국.일본 처럼 정부가 우리 기업들의 販賣戰略을 代行하지 못할 것도 없다.곧 있게 될 일본과의 頂上회담,中國과의 정상회담등에서 우리도 보다 실속있는 경제적인 합의 몇 개라도 만들어낼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제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