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정책,국민은 불안하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핵사찰 문제가 제기된 이래 정부의 대응책을 보면 과연 확고하고 일관된 정책기조가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불안하기만 하다. 정책이 상황에 따라 순식간에 오락가락하는가 하면,그 대응이 냄비 끓듯 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15일 끝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시설 사찰결과를 보고 나타나는 정부의 반응만 해도 그렇다. 어제까지 대화와 유화책에 매달리는 것 같더니 사찰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자 담박 초강경대응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대통령마저 외국 텔레비전과의 회견에서 「국제적 제재가 가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북한이 핵비확산조약(NPT)에서 탈퇴를 선언한 이후 지난 1년동안 정부의 대응방안을 되돌아보며 특징을 찾는다면 강경책과 온건책이 원칙없이 엎치락 뒤치락 해온 것이 두드러진다. 그에 반해 북한은 옳든 그르든 자기네 원칙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양보한 것 하나 없이 1년이나 시간을 벌며 미국과의 접촉,팀스피리트훈련 유보라는 성과를 얻어냈다.
정부의 대응책이 오락가락한 것을 두고 당시 상황에서는 북한의 태도에 따라 전술적으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보면 뚜렷한 목표없이 표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의 정부대응에서 핵문제가 우선인지,남북한관계 개선이 우선인지 불분명했던 점이 국민의 혼선을 가중시켰다. 특사교환 문제만해도 정상끼리 핵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기 위한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교섭 경과나 북한의 태도는 그 목표가 무엇인지 흐리멍텅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성격의 회담에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또 하나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미 여러차례 지적돼 왔듯이 남북한 문제를 다루는 정부 부처간에 긴밀한 협조와 논의가 이루어지고,남북한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실무그룹의 의견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는가 하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오락가락한 대북정책의 원인을 캐보면 대개가 고위 정책입안자들의 개인적 소신에 상당히 좌우돼 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한 관계에서는 고위당국자일수록 자기 소신을 절제하고 오랫동안 북한문제를 다루어 온 전문가들의 논의과정을 중시,어떤 결론을 내리는지 지켜보면서 정책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 역시 최고 정책입안자라는데서 예외가 아니다. 최고정책결정자의 생각을 세심한 고려없이 밝히는 것은 전략적으로 우리 입장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북한관계는 즉흥적이거나 단기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뚜렷하고 확고한 원칙과 긴 안목에서 풀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