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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땅 사기 등기 공무원이 잡아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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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호적등본과 제적등본을 위조해 100억원대의 부동산을 가로채려던 사기범이 등기소 직원의 기지로 덜미가 잡혔다. 성모(46.서울 서대문구)씨는 법무사를 통해 상속을 받았다며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임야 3만2158㎡(약 9745평)에 대한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를 22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파주등기소에 신청했다.

나대지인 이 땅의 과세시가표준액은 15억원이며 시가는 100억원 정도다. 원래 이 땅은 성(姓)이 같은 다른 성씨 소유였다. 성씨는 땅 소유자를 자신의 아버지인 것처럼 위조했다. 성씨는 이를 위해 서울 종로구청에서 발행된 호적등본과 제적등본을 위조해 제출했다. 위조 호적등본에는 땅 소유자인 성씨가 1989년 사망한 것으로 돼 있었다. 또 땅 소유자인 성씨의 부인과 다른 아들도 먼저 세상을 떠나 임야는 성씨가 단독으로 상속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성씨의 등기이전 서류를 검토하던 박민구(44.사진) 등기관은 근저당설정이 전혀 없이 서류가 지나치게 깨끗한 데다 다른 상속 관계인이 없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호적등본 위조범들이 많이 이용하는 서울 종로구청에서 발행된 등본이라는 점도 미심쩍었다. 그래서 박 등기관은 23일 고양지원에서 성씨의 호적 및 제적등본을 발급받아 확인한 결과 위조 사실을 발견했다. 두 호적을 대조한 결과 성씨는 자신의 호적등본을 뗀 후 땅 소유주를 자신의 아버지인 것으로 위조했다. 또 사망한 땅 소유자의 제적등본을 떼 자신이 호주를 승계한 것처럼 서류를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파주등기소는 23일 성씨를 공문서 위조 혐의로 파주경찰서에 고발했다. 실제 향양리 임야의 소유자는 86년 사망했으며 상속권이 있는 자녀들은 세금이 부담돼 소유권을 아직 이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 등기관은 "제출된 서류가 진짜처럼 완벽해 그대로 지나칠 뻔했으나 상속 조건이 특이한 게 수상해 법원에서 호적등본을 조회한 결과 사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해당 토지의 실제 상속인인 성모씨는 "세심한 업무처리 덕분에 선친이 물려준 땅을 사기범들에게 빼앗길 뻔한 사고를 막을 수 있게 돼 고맙다"고 말했다.

파주=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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