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찰청장의 책임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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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경찰이 걱정스럽다. 이택순 경찰청장이 황운하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총경)에 대한 중징계 의결을 요구한 데 경찰 내부의 반발이 거세다는 소식이다. 황 총경은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 폭행 수사와 관련해 경찰 내부 전산망에 이 청장의 퇴진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황 총경의 징계 사유는 ‘복무규율위반’이라는데 총수 사퇴를 주장하는 글을 쓰고 언론에 총수를 비난함으로써 지휘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경찰의 위신을 추락시켰기 때문이란다.

상명하복이 필요한 조직 속성상 일선 경찰관들의 총수 퇴진 요구는 바람직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기관일수록 조직이 흔들릴 때 총수가 중심을 잡고 솔선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게 상식이다. 시류에 편승해 흔들리는 총수의 명령이 지휘계통을 똑바로 내려가 하부조직에 전달될 수 있겠나 말이다.

이 청장은 김 회장 사건과 관련, 고교동창인 유시왕 한화 고문과 “통화한 적 없다”고 국회에서 증언했지만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은 물론 골프까지 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의 복무규율 내용이 어떤지 몰라도 위반을 했다면 이 청장이 먼저인 것이다. 게다가 언론의 사퇴 요구에도 불구, 청와대의 지원으로 자리를 지킨 이 청장이 지난달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내부 비판문화를 활성화하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징계를 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비판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용렬(庸劣)한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부의 억지스러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경찰이 한술 더 뜨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총수가 자신을 비판한 언론에 대한 보복, 그리고 자신에 힘을 실어준 청와대에 대한 충성이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이 청장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개인정보 조회와 관련해 거짓말을 한 사실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이지 ‘권력의 몽둥이’가 아니다. 이 청장은 바른 소리 하는 부하를 손보는 데 힘쓸 게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고 부끄러움을 깨닫는 데 애써야 한다. 그것이 민중의 지팡이가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