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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가족 소설 '즐거운 나의 집' 독자 독후감 200여 통 읽어 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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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원래 계획은 이렇지 않았다. 공지영 가족소설 ‘즐거운 나의 집’ 마감을 앞두고 독후감 공모를 결심했을 땐, 작가가 선정한 한 편만 소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답지하는 e-메일을 열어보고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독자 의견도 있었다.

“신문 1면을 장식하는 위대하고 큰 정치판 이야기들은 나에게 큰 감동이 없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일상들이 나를 가슴 찡하게, 마음 시리게 했다.”
 
26일 오후까지 본지에 접수된 e-메일은 200여 통. e-메일 대부분은 소설이 연재되는 6개월 동안 거의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소설을 찾아 읽었다는 열렬 독자의 것이었다. 날마다 소설을 스크랩해 읽고 또 읽었다는 독자도 수두룩했다. 막상 놀라운 건 독후감의 내용이었다. 작가처럼 이혼을 했거나 이혼 가정에서 자란 독자의 사연이 수십 통 배달됐다. 그러나 평범한 독자의 사연이 훨씬 많았다. 독자들은 하나같이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가족을 되돌아 봤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이혼한 여자와 이혼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그래서 ‘즐거운 나의 집’이 연재를 시작했을 땐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반응이 쑥 들어갔다. 이혼한 엄마와 성씨 다른 세 아이가 함께 사는 가족과,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에 평범한 가족은 없었다. 가족이란 말 속엔 가족마다의 아픔이, 남모를 눈물이 담겨 있었다. 소설은, 바로 그러한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 줬다.

한 여성독자는 “즐거운 나의 집에서는 전혀 즐겁지 않은 일들이 매일 일어납니다. 그래도 나의 마음과 몸이 쉬고 있고 사랑스런 아이들이 자라는 곳입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와 같은 사연 중에서 몇 구절을 옮긴다. 구절마다 오늘·우리의 삶이 보석처럼 박혀있다. 독자 사연을 읽으면서 공지영 씨는 “감사할 따름”이라며 말을 아꼈다.

공지영 가족소설 ‘즐거운 나의 집’은 이달 31일자로 막을 내린다. 독후감은 오늘(27일) 자정까지 받는다(e-메일 :moonwha@joongang.co.kr ). 선정된 응모작은 다음달 1일 작가 인터뷰와 함께 본지 지면에 실린다.  

손민호 기자

독자 독후감에서 찾아낸 우리 가족의 모습

“둥빈이 외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돌아가시는 것도 생의 일부라고 느끼며 가실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
 
-위독한 친정 아버지 간병으로 여름 휴가를 다 보낸 어느 딸
 
“나는 오늘도 직장에 나왔습니다. 돈 벌러 나왔습니다. 이젠 가족을 위해 돈을 법니다.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 나에게 가족이 있어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어려운 살림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며 가족 생계를 책임진 1남4녀의 막내딸
 
“영원히 함께할 것 같은 가족. 생각해보면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인생의 3분의 1도 되질 않는다. 어느 시기가 되면 가족의 둥지를 떠나 각자의 둥지를 새로이 만드니까.” 

-결혼 1년차 주부
 
“우리 딸아이에게 나는 새엄마입니다. 저도 가끔 우리 큰아이와 딸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새엄마는 동화 속에 나오는 새엄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서로 정말 인색하거든요. 아이들은 새엄마에게 인색하고 새엄마는 아이들에게 인색하고. 내가 태어나서 한 일 중에 내가 가장 마음에 들고 훌륭한 일은 아이들의 엄마가 된 일입니다.”
 
-5년 전 큰아이와 딸아이가 있는 집에 들어가 18개월 된 아들을 얻은 새엄마
 
“불의의 사고로 큰 형수가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큰 형님도 돌아가셨습니다. 큰 형님 생전에는 오 형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형제간에 우애가 좋았는데 돌아가시고 어머니 모시는 문제 때문에 현재 서로가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나의 집’을 보면서 가족의 애틋함과 소중을 많이 느꼈습니다. 요번 기회에 화목의 자리를 마련하여 돌아가신 형님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남은 형제가 우애 있게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광주의 한 중년 남성
 
“위녕! 우리 엄마도 내가 수능을 보는 동안 친구라도 만나서 낮술을 즐길 수 있게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교문 앞에서 덜덜 떨며 기다리고 있는 엄마는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네 말에 폭소했어. 나도 늘 그렇게 말하고 다녔거든. 네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나도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 나도 네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 더 자란 것 같아 고마워. 남은 10대, 우리 더 크자! 그래도 미모는 챙겨야 한다.”
 
-서울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수험생 이모양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어느 누구에게나 엄마 아빠 이야기를 편하게 솔직하게 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 바로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다는 것이었다. 친척들도 선생님들도 나를 대하는 것이 달라졌다. 아니 내가 그들을 대하는 것이 힘들었고 불편했다.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나를 다른 아이와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다. ‘엄마 아빠가 이혼한 아이는 안다. 거실 너머 안방에서 들리는 새엄마 아빠 소리에 얼마나 귀가 쫑긋해지는지’란 위녕의 말에 어찌나 가슴 저렸는지 모른다.”
 
-이혼 가정에 자라난, 지금은 서른이 훌쩍 넘었다는 여성 독자
 
“나도 내 자신이 가정을 꾸려나갈 능력도, 엄마가 될 준비도 자격도 돼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딸보다도 더 유치하면서도 더 참지 못하면서도 가끔 아직도 이 자리를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곤 새삼 놀라곤 한다.”

-나이와 주소를 밝히지 않은 엄마
 
“엄마가 학교에서 아들의 담임을 만나는 장면을 읽을 땐 엉엉 울었습니다. 이혼 신청 초기, 내 애들 학교의 몇몇 선생들에게 상담신청을 해서 내 애들에겐 학업성적보다는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격려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호소했던 그 암담했던 날들이 생각났습니다. 엄마라는 직업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리옹에서 52살의 이혼한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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