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술술술 팔리는 ‘술’ 소비심리 기지개 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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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목요일인 23일 늦은 밤. 서울 강남 역삼동의 한 고급술집의 방 30여 개가 거의 다 찼다. 술집 종업원은 “휴가철인데도 의외로 손님이 많다”며 “지난해 이맘때보다 20% 이상은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종업원은 “주가가 얼마까지 오를 것이라는 둥, 유망종목이 뭐라는 둥 주식 관련 대화를 하는 손님이 많아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올해 들어 맥주·위스키·소주 등 주류 판매량이 확연히 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경기 침체와 성매매특별법 시행 등 각종 규제로 움츠러들었던 주류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26일 대한주류공업협회와 주류업계의 판매량 집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 맥주 출고량은 올해 들어 7월까지 1억1862만 상자(500mL들이 20병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증가했다. 국내 맥주시장은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2억555만 상자를 기록한 이래 침체 양상을 보이며 2004년을 제외하고는 1억9000만 상자 대의 판매량을 보였다. 맥주업계는 올 상반기 판매 증가 추세대로라면 국내 맥주 출고량이 올해 2억 상자를 다시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위스키도 올해 들어 7월까지 판매량이 144만1000상자(500mL 18병 기준)로 지난해 동기 대비 7.8%의 증가율을 보였다. 2002년 341만 상자로 정점을 찍었던 위스키 판매량은 2004년 접대비 실명제와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263만 상자로 급락한 뒤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다.

 

‘서민의 술’이라는 소주도 맥주와 위스키보다는 못하지만, 7월까지의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소폭(1.8%) 늘었다. 소주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증가율이 연말까지 이어질 경우 지난해의 사상 최다 판매기록(1억848만 상자)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주류시장이 살아나는 데에는 소비심리 회복의 영향이 가장 크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이트맥주 유경종 차장은 “술 소비와 내수 경기 회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며 “몇 년간 정체 상태를 보였던 술 시장이 기지개를 켜는 것도 올 초부터 시작된 주가 상승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술 소비 증가를 경기 회복 탓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일면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술 소비가 늘어난 데에는 주류업체들의 치열한 마케팅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소주업계는 부드러운 술을 찾는 여성 및 젊은 소비자층을 겨냥해 잇따라 ‘저도주’를 내놓고 있다. 진로와 두산은 지난해 소주 도수를 기존 21도에서 20도로 낮추더니, 최근에는 19.5도까지 낮춘 제품을 내놓았다. 또 맥주업계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식이음료 함유 맥주 등을 출시하며 젊은 층을 공략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보통 선거 시즌이면 술자리가 많아지면서 술 소비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매출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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