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장로’ 후보 옆의 ‘처사 서포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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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13면

“조금 언짢은 기분도 있었지만 ‘이게 인연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 후보의 비서실장 역할을 수행한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이 후보 캠프에 합류를 결정하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주 의원은 경선 전까진 이 후보와 별 친분이 없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온 이상득 국회부의장, 이재오 최고위원의 도움 요청을 받은 주 의원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중립지대에 머무르는 쪽에 마음이 기울었다. 박근혜 전 대표와도 심정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다.

<'MB 대통령' 꿈꾸는 13人의 정치두뇌>스님보다 더 스님을 많이 아는 주호영 의원

거듭된 이 후보 쪽의 요청에 번민하던 그는 올 1월 신문에 그가 이 후보 캠프의 대변인·비서실장으로 거론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당황했다고 한다.
주 의원은 “도와달라는 말은 오갔지만 직책 등에 대한 얘기가 전혀 없던 상태에서 보도가 나와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며 “하지만 한편으론 나의 도움이 얼마나 절실하면 그랬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잡혀있던 미국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캠프행을 결심했다.

판사 출신인 그는 불교계 인맥이 대단하다. 주 의원과 함께 있으면 휴대전화를 받으며 “예, 스님” 하는 모습을 수시로 보게 된다. 의원회관의 사무실에서 승복을 입은 스님이 주 의원을 기다리는 광경은 일상이다. 기독교 신자인 이 후보로서는 ‘종교의 벽’을 넘는 데 주 의원의 도움이 절실할 만하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경 소리와 종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경북 울진의 고향집이 사찰 바로 옆집이었다. 농업학교 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이사해 ‘뺑뺑이’로 고교에 들어갈 땐 조계종 종립학교인 능인고에 배정을 받았다. 영남대 교정에서 늘 경전을 끼고 다녔고, 판사 시절엔 아침에 한 시간 정도 경전을 읽고 재판에 임했다.
사찰과 관련한 법률 문제를 상담하는 스님들이 수시로 찾아오면서 불교계 인맥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주 의원이 초파일에 축하의 말을 전하는 스님 숫자가 500명 정도. 통도사 주지인 정우 스님은 주 의원을 “스님보다 더 스님을 많이 아는 처사(남자 신도)”라고 일컫는다.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도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다.

하지만 막상 이 후보는 주 의원에게 도움을 청하며 불교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주 의원은 “이 후보가 마음 속에 그런 (불교계 도움의) 생각을 깔아놨는지는 모르지만 대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한나라당과 나라에 관련된 얘기만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캠프에 합류할 때 대변인을 맡아달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그는 거절했다. 대변인 직을 맡으면 상대 후보를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비서실장이 됐다. 매일 오전 언론 보도와 주요 사항들을 체크해 7시까지 캠프에 출근, 이 후보에게 일정을 비롯한 상황들을 보고하는 게 그의 임무다. 특별한 보고사항이 있을 땐 새벽에 이 후보의 집으로 찾아갔다. 심야 전략회의 때도 이 후보의 곁을 지켰다.

주 의원은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 후보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모든 걸 챙기고 최대한 민주적으로 반영하려 애쓴다는 점에 놀랐다”며 “때론 모든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느라 결정이 늦어지기도 하더라”고 전했다. 단점으로는 “사람을 대할 때 잘 끊지를 못해 일정이 자꾸 지연된다”며 “면담이든, 전화든 예상보다 길어지기 일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박 전 대표 쪽 인사들과의 화합에 노력하고 있다. 박종근·엄호성·김태환·유기준 의원 등 상대편에 섰던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가거나 전화해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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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死 기로서 깨달은 '인과'의 진리

주호영 의원은 대구지법 영덕지원장이던 1998년 3월 생사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다. 중앙선을 넘어온 승용차가 주 의원의 차와 충돌한 것. 두개골이 골절되고 눈·대퇴부·턱뼈 등 10여 군데를 심하게 다치는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 의식을 잃지 않아 주 의원이 직접 119에 신고하는 정신력을 발휘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 의원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삶과 죽음을 현실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어렸을 적 농작물을 먹으려는 소를 돌로 때려 눈을 다치게 한 일이 있었는데 병상에서 깨어날 때 그 소가 눈에 피를 흘리며 지나가는 광경이 보였다고 한다. ‘인과’의 진리를 깨닫게 한 순간으로 주 의원은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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