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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제] 씨티·SC, 선진금융 어디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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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20면

2004년 3월 4일 서울 강남의 르네상스 호텔.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주최 조찬간담회에 참석한 이헌재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미국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는 그 자체가 한국 금융시장 발전에 자극제와 촉진제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발표된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미국 씨티의 한미은행 인수에 대한 논평이었다.

당시 국내 금융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12개의 지점만으로도 국내 은행을 수익성 측면에서 압도했던 씨티가 225개의 지점을 가진 한미은행을 인수하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것으로 여겨졌다. 이듬해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제일은행을 인수했을 때는 외국계 은행에 대한 두려움이 최고조에 달했다.

외국계 은행의 국내 진출은 이 전 부총리의 말대로 자극제가 됐다. 그러나 이들 외국계 은행이 국내 금융산업 발전을 촉진하지는 못한 것 같다. 우선 수익성만 봐도 토종 은행에 훨씬 못 미친다.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수익률(ROA·총자산으로 얼마의 수익을 냈느냐를 나타내는 지표로 높을수록 좋다)은 올 상반기 씨티와 SC제일이 각각 0.97%와 0.65%를 기록했다. 신한·국민 등 나머지 시중은행은 모두 1%선을 넘었다. 잔뜩 기대했던 선진금융기법도 찾기 힘들다. 오히려 SC제일은행은 고금리 대출상품을 내놓아 노조로부터 “대부업체와 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실제로 이 은행의 중소기업분할상환대출의 평균금리는 17.4%. SC제일은행은 “담보제공 능력이 없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해명한다.

현지화 작업도 삐걱거린다. 씨티는 엉거주춤한 현지화 전략으로 구 씨티와 구 한미 양 진영으로부터 불만을 샀다. 소수 정예였던 구 씨티 임직원 900명 중 300명가량이 직장을 떠났다. 또 구 한미 노조는 장시간의 파업과 태업을 벌였다.

SC제일은행 노사는 더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노조 집행부는 한국 실정에 맞게 조직을 바꾸고 경영전략을 전면 수정할 것을 요구하며 100일이 넘는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양 진영의 충돌은 문화충돌로 비칠 정도다.

이 와중에 또 다른 글로벌 은행인 HSBC가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더라도 한국 금융산업을 한 단계 격상시킬 것이란 기대는 무리다. 이미 씨티와 SC를 통해 학습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계 금융자본이 진출할 때마다 나왔던 “선진 금융기법 접목”이라는 정부 당국자의 단골 레퍼토리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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