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회동… 정국 “꽃샘추위” 예보/영수회담이후 되레 꼬여가는 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궁지몰린 이 대표 공세 나설듯/대북정책·UR비준 격돌 예상
여야 영수회담의 결렬로 정치개혁입법을 합의로 만들어 놓고도 정국에 어두운 구름이 끼는 듯하다.
이번 회담에서는 김영삼대통령이나 이기택 민주당 대표 모두 아무 것도 얻어내지도,상대방을 설득하지도 못했다. 서로 너무 다른 인식차이만 드러냈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 우루과이라운드(UR) 비준 등 정국을 이끌어가는데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기 쉽지 않게 됐다.
이기택대표도 회담을 계기로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 했던 의도를 이루기는 어렵게 됐다.
이 대표는 자신의 취임 1주년인 11일 대통령으로부터 회담제의가 왔을 때 무언가 선물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학생처럼 설교만을 듣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청와대측의 일방적 발표를 통해 「인간적인 모욕」까지 당했다고 분개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으로만 치달은 것은 회담을 돌발적으로 제의하고,아무런 준비도 없이 만난데 가장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더구나 김 대통령은 아직 이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라기보다 한 격 낮은 지도자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김 대통령이 안정적으로 정국을 이끌기 위해 야당의 협조를 구하려면 불안한 이 대표의 야당내 위상을 높여줄 필요도 있다. 아직도 장외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대중씨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회담중 발언을 보면 야당의 협조를 구하려는 자세인지에 회의가 간다.
이번 회담으로 이 대표는 당장 당내에서 어려운 형편에 몰리게 됐다.
11일 마포 민주당사에서 회담내용을 보고하자 참석했던 의원들은 모두 회담결과에 냉소적이었다.
『만난 것 이상 의미가 있느냐』 『오늘 왜 청와대에 갔나』 『칼국수 먹고 사진 찍으러 간 것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최근 겨우 진정시켜 놓은 당내 갈등에 바람을 넣은 셈이다.
지난해부터 연기하다 이제 시작하려는 조직정비나 국회직 개선에서도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로서는 대여 공세를 강화함으로써 당내 불만을 무마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이 대표 스스로도 측근들에게 청와대가 일방통행한데 대해 심한 불쾌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관계가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대표는 벌써 김 대통령의 대북관을 비난하고 나섰다.
지난해 6월 만났을 때와 달리 너무 우경화·보수화해 있다는 것이다. 안기부 등 권력 주변의 보수집단으로부터 세뇌당한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기본인식의 차이는 앞으로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이 계속 야당과 마찰을 빚을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이 대표는 김 대통령이 거부한 국가보안법 개정문제를 공론화하여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으로 일단 쟁점으로 부각시키는데는 성공했기 때문이다.
역시 가장 큰 긴장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은 UR협정 비준이다.
민자당은 5∼6월께 임시국회를 소집해 비준을 마치겠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반대투쟁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어차피 비준 반대운동을 치열하게 해야 하는데 청와대 회담이 결렬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농민단체 등과 연대활동을 강화하면서 대정부 공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노동관게법 개정이나 광주문제 등에 대해서도 전혀 새로운 것을 내놓지 않아 야당의 실망이 이번 봄 임투와 연결되면서 정국은 대결국면으로 치닫게 될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김진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