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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중가수 안치환의 신세대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가요계에서 90년대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가수가 서태지라면 80년대 젊음의 상징은 민중가수 안치환이었다고 할수있다. 대학이라는 공간을 놓고 봤을때 90년대 신세대가 문민정부 아래서 이념보다 컴퓨터와 더 친숙한 행복한(?)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과 달리 80년대 세대들은 연일 최루탄 냄새를 맡아야 했다.
안치환은 84년 연세대 입학과 동시에 교내 노래패에 들어가 노래운동을 시작했다.88년 졸업후에는 1년6개월동안「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다 90년 이후 솔로로 독립했다.『솔아솔아 푸르른 솔아』『광야에서』『잠들지 않는 남도』『 철의 노동자』등에서 보여주듯 그의 노래는 노동운동의 당위성이나 기층민중들의 아픔을 달래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이러던 안치환이 음악세계에 조심스런 변화를 보이고 있다.시대분위기에 맞는 대중성 있는 음악을 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운동 현장에서 비장감에 찬 노래를 불러왔던 그에게 변화는 그리 쉽지 않다.그는 요즘들어 음악 뿐만 아니라개인적인 의식의 변화 과정을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안치환이 겪고 있는 고통은 80년대 운동에 가담했던 사람이면 누구나 겪을 법하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작가공지영을 비롯해 80년대 세대 작가들의 소설 속에는 90년대 앞에서 망연자실해하는 운동권 출신들이 자주 등장한다 .갑작스런사회변화로 잃어버린 자신들의 좌표에 대한 집착이고 향수일 것이다. 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던 80년대 세대들에게도 90년대에 대한 당혹감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같다.운동에 가담했건 안했건80년대 세대들은 운동의 당위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고 의식형성 과정에 좌파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부인하 기 어렵다. 그래서 어찌보면 80년대 세대의 의식저변에 물질적 행복추구에 대한 막연한 죄의식과 역사발전에 대한 강박관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시대의 산물로 보이기도 한다.이렇게 다른 정치적 상황에서 대학생활을 한 80년대 세 대 안치환은 자신의 젊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90년대 세대를 어떻게 보는지 1일부터 공연중인 마당세실극장으로 그를 찾아갔다.
-음악세계에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주고 있고 그 계기는 무엇인가. ▲2집까지는 운동가요라 할수 있는 노래들이 거의 전부였다.지금은 운동가요에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큼 명확한 사회적 이슈가 있는 시대가 아니다.대중과 함께 호흡하려면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이번에 나온 3집은 러시안 발 라드나 군가풍의 운동가요 성격을 탈피해 포크.록의 요소가 강하다.
가사도 정치적인 내용은 거의 없고 비운동권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가 많다.
-갑작스런 변화가 쉽지 않을텐데 어떤 점이 가장 힘드나.
▲90년대의 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워 당황스러울 뿐이다.3집에사랑노래가 없는 것은 의식적으로 안해서가 아니라 아직 못하고 있을 뿐이다.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가사를 써봤는데 스스로 문학성이 부족하고 교과서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사 회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직도 강하기 때문인 것같다.
-80년대 세대와 90년대 세대의 차이를 무엇이라 생각하나.
▲최근 모교앞 소주집에서 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신적이 있는데 한 친구가 건물벽에 방뇨하다 연대생들에게 맞은 적이 있다.「신촌을 더럽힌다」는 이유 때문이었다.80년대세대들은 독재라는 큰 적과 싸웠기 때문에 조그만 잘못들은 허용하고 지냈다.90년대 세대들이 공중질서 같은 세밀한 면에 신경을 쓰는걸 보면 그만큼 사회가 발전했다는 생각도 든다.그러나 그때 맞은 친구가 서운해 하는걸 보며 80년대 세대가 90년대에 재빨리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80년대에 헌신적으로 살았던 인물들일수록 이런 부적응이 심해 마음이 아프다.90년대 세대가 누리는 여유를 80년대 세대가 뿌린 씨앗의 열매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서태지의 랩이나 요즘 유행하는 흑인음악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미국공연 갔을때 3류 술집 흑인가수의 노래실력에 깜짝 놀랐다.흑인음악이 자신들의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일이라 생각한다.요즘 신세대음악은 우리 정서와의 관계가 약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대중매체 출연요청은 어떻게 하나.
▲특별한 요구조건이 없으면 다 나간다.3집앨범은 음반사에 홍보를 해달라고 내가 자청하기도 했다.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예스터데이』처럼 오래 남는 노래를 남기는게 꿈이다.대중성과 예술성이 반드시 대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시대가 바 뀌어도 늘 대중곁에 있는 생명력있는 노래인생으로 남고 싶다.
안치환은 1,2집에 수록된 대표적인 운동가요들을 새로운 풍으로 리메이크한『1+2』라는 CD를 내고 현재 공연장에서 직접 사인판매를 하는가 하면 공연의 레퍼터리도 3집앨범 중심으로 꾸미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
3집의 타이틀곡『고백』에서 그는 현재의 심경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누구도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네/나를 찾고자 현란한언어에 휩쓸려 이 거리를 떠돌고 있을때/덧없는 청춘의 십자가여너를 부여안고 나는 울었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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