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남의 배우자는 검증된 이성” 더 매력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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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욕망의 진화
원제 The Evolution of Desire
데이비드 버스 지음, 전중환 옮김
사이언스북스, 592쪽, 2만원

  1994년 출간되어 진화심리학이란 신생 학문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심리학의 고전이다. 여기서 ‘욕망’이란 짝짓기에 관한 것이다. 사랑·연애·섹스와 관련한 심리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진화라는 측면에서 설명한다.

 이를테면 남성과 여성의 성 욕망이나 전략이 다른 것도 자연선택의 결과란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가능성이 더 키우기 위해 남성들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는 여성을 배우자로 택해야 했고 이를 위해 번식 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린 나이와 건강을 나타내는 완벽한 대칭·매끈한 피부 등 외모에 민감하게 됐다.

 또 가능한 한 많은 여성들과 짝짓기를 하려 하고(바람기), 배우자의 순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성적 질투)도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임을 확신할 수 없는 생물학적 특성 탓이라고 한다.

 반면 여성들은 한 번 임신하면 심리적 육체적 소모가 남성에 비해 많기 때문에 자신에게 꾸준히 ‘투자’해 줄 수 있는지 사회적·경제적 능력을 더 따지는 심리기제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또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굳이 많은 이성과 접할 필요가 없기에 여성들의 외도가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적다고 보았다.

 이미 ‘임자’가 있는 이성을 앗아가는 ‘배우자 밀렵’도 마찬가지다. 유부남 혹은 유부녀를 채가는 배우자 밀렵은 성경에 실린 다윗 왕과 밧세바 이야기에서 보듯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람직한 배우자를 찾는 데 유용한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오늘날에도 생각보다 흔하다. 지은이와 데이비드 슈미트란 진화심리학자가 행한 조사에서 남성의 35%, 여성의 30%가 배우자를 뺏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01년 슈미트가 30개국 이상에서 실시한 비교문화연구에서도 비슷한 비율이 나타났다.

 여기에도 진화의 동기가 숨어 있다. 하나는 복수심이다. 내게 해를 끼친 경쟁자에게 손실을 입혀 그의 번식 성공도를 떨어뜨리거나 다른 잠재적 경쟁자가 내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다른 이의 배우자를 채간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임자 있는 이성은 이미 다른 사람의 판단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에, 즉 검증된 배우자란 이득이 있어 배우자 밀렵에 타고난 매력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어떤 지식이 학문으로 ‘홀로서기’을 하려면 독자성과 사회적 유용성을 갖추어야 한다. 진화심리학도 예외는 아니다. 배우자 밀렵에 대처하는데 도움이 될 내용도 소개한다. 다른 사람의 배우자를 꼬드기는 데 쓰이는 전술의 첫 번째는 ‘시간적 침입’이다. 노리는 상대의 ‘임자’보다 더 자주 그 곁에 머무르기 위해 쓰는 방법이란다. 자기 일정 바꾸기, 상대의 근무 시간에 불쑥 찾아가기 등이 그렇다. 두 번째는 ‘쐐기 박아넣기’다. 두 사람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그가 널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네가 그보다 훨씬 더 나아” 하는 식으로 이별을 적극 부채질 하는 것이다. 이에 적절히 대처하면 백년해로에 도움이 될까.

 원저가 출간된 지 10년 이상 지난 만큼 내용의 상당 부분은 널리 알려졌다. 또 생물학적 결정론에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한 2007년 개정증보판을, 한국 최초의 진화심리학 박사가 꼼꼼히 옮겼다는 점에서 책은 단순한 흥미거리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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