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인권 외면하는 법원 구치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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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떤 집이든 옷장속에 해골을 감추고 있다』는 외국속담이 있다.이 말은 누구나 밖으로 감추고 싶은 비밀 또는 치부가 있게마련이라는 뜻이다.법원 구치감을 보았을때 이 속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양 최대 규모」라며 신축된지 몇년 안됐다는 서울서초동 법원청사 지하에 자리잡은 구치감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로 처음에는 피고인들의 주장이 믿기질 않았다.
하루 2백~3백명의 구속피고인들이 재판을 받기위해 대기하는 장소인 구치감이 바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마저 외면하는 인권의 사각지대라니….
서울법원청사 구치감의 유치장(피고인 보호실)은 지하1층에 5개,지하2층에 4개등 모두 9개.그러나 이곳 어디에도 화장실이설치된 곳은 없었고 대신 유치장 안에 플래스틱 물통이 놓여있을뿐이었다.이때문에 지하층 전체에 악취가 진동하 는 것은 당연한일이었다.
『지금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피고인들이 유독 많은 날이나 여름엔 악취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교도관의 설명이 그리 과장된 말같지 않았다.악취는 피고인들이 법정으로 가기 위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에까지 배어 있었다.용변을 강제로 참으면서 문명의 이기라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닌다는게 우스웠다.구치감에 수용되는 사람은 형이 확정 되지 않은 미결수들이다.
우리나라 헌법엔 누구라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구치감에서 신문지로 한쪽만 가리고 플래스틱 물통에 볼일을 보면서 피고인이 느껴야하는 수치감 자체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 가혹한 형벌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법원측은 이에 대해 『건물이 거의 완공된 시점에서 설계가 변경돼 유치장에 화장실이 마련되지 못했으나 건물 지하가 암반이고배관시설이 안돼 있어 개조공사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그러나이 말이 결코 피고인들의 짓밟힌 인권이 그대로 방치돼도 좋다는뜻은 아닐 것이다.
판결로 가혹수사를 다스리고 법정에서 피고인의 수갑.결박을 풀어주는 것은 외관으로 보여주는 사법부의 인권보호일 뿐이다.국민소득 7천달러를 앞세우며 온통 국제화를 외치는 시대에 사법부는보이지 않는 음지의 인권부터 보호토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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