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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직할체제로 “큰 회오리”/창사후 처음 외부회장 맞은 포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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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조라인 불화로 끝내 동시 퇴진/경영진 잦은 교체로 하부구조 흔들
세계 2위의 철강기업으로 한국제조업 얼굴중 하나인 포항제철이 창사 26년만에 처음으로 외부인사를 회장으로 맞아 인사·경영전반에 걸쳐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됐다.
지난해초까지만해도 「철의 사나이」 박태준(전 명예회장)이라는 단단한 울타리 덕에 최고경영진의 내부승진을 철칙으로 운영해오던 포철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고 새 정부의 「개혁」바람을 정면으로 안게 됐다.
지난해 2월 박태준씨가 정치상황과 관련해 포철을 떠났으나 새 정부가 일단 내부인사인 정명식씨와 조말수씨를 회장과 사장으로 선택해 포철 출신에 의한 포철의 변신을 도모했다가 이번에 새 정부 직할체제로 바꾼 셈이다. 정 회장과 조 사장은 지난 1년간 나름대로 공기업인 포철 개혁을 추진,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결국 정부측을 만족시키지는 못한 결과가 됐으며 두 사람의 동시 전격 경질은 지난 1월초 두사람의 불화가 제일 큰 빌미로 작용했다.
정 회장은 조 사장팀이 자신을 주요 정책결정에서 소외시키고 있다고 판단,지난 1월3일 시무식 자리에서 회장중심 운영체제를 전격 선언하고 조 사장 측근역할을 해온 장중웅상무를 해외발령(결국 사표수리)하는 등 독자적인 인사조치를 단행해 물의를 빚었었다.
두사람은 의외로 파문이 커지자 화해의 몸짓을 보였고 최근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따내는 과정에서도 역할을 분담,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 때 불편해진 정부 고위층의 심기를 끝내 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포철의 감독기관인 상공자원부의 김철수장관은 8일 배경설명을 통해 『경영진 불화에 대해 두사람 모두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며 갈등을 자제하고 있다고는 하나 내분이 재연될 소지가 있어 국민기업을 맡기기에는 합당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결국 새 정부는 두사람의 불화에서 단서를 잡아 연 매출 7조원에 이르는 거대 공기업의 경영장악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배경과 관련,일부 정치권뿐 아니라 업계 일각에서는 포철이 국민주주 지분 48.9%인 국민기업인 만큼 「정부의 회사」가 아닌 「국민의 회사」로 키워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지분 35.7%의 최대 주주로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으나 앞으로 행여나 고위층의 비위를 거슬렸다고해서 경영진이 전격 교체되는 사례가 생겨서는 경영의 안정을 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포철은 세계 철강업계를 좌우할 정도로 수출과 내수면에서 기여도가 너무 커 흔들림이 없어야 할 기업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김 신임회장이 「철강왕국」으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는 포철에 무혈 입성했지만 앞으로 개혁작업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어쨌든 지난해 봄보다는 큰 시련을 겪게 된 포철의 향방이 주목을 받게 됐다.<김일기자>
◎포철 새 회장 김만제씨/대선때 자문맡아 대통령과 인연/YS측근 막바지 「지원」으로 전격 낙점
포철의 신임회장 김만제 전 부총리는 8일 오전 8시쯤 포항으로 내려가기 위해 자택을 나섰다.
지난해 8월 민자당 서울 강남을지구당 위원장직을 사임한지 7개월만의 첫 출근이다.
그러나 본인조차 만 24시간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갑작스런 출근이었다. 이번 포철 수뇌부 인사가 지난 몇주간 청와대 비서진과 대통령의 측근이 직접 챙기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7일 오후 늦게야 김 회장에게 낙점되는 등 의외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7일 오후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으로부터의 전화를 받고서야 거취를 알았을 정도다. 또 그 시간에 「밀봉」된 포철의 최종 인사내용은 포항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정명식회장이나 조말수사장이 봉투를 뜯어보고 자신들의 퇴임사실을 안 것은 밤 11시가 다 돼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일본행이후 정 회장·조 사장간의 불화로 정계·관계·업계를 모두 포함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포철 인사는 이처럼 막판에 의외의 낙점이 내려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정 회장·조 사장 두사람 모두가 유임된다는 관측이 유력하던 포철 인사가 이처럼 바뀐 것은 막판에 포철이 2통 지배주주권을 따는 과정에서 조 사장이 한 「역할」과 청와대 핵심인사와의 「관계」에 대해 정치적으로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최종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임 김 회장은 대선때 「대통령후보 경제자문팀장」을 맡았던 인연이 있어 김영삼대통령의 주변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았던 인물이다. 비록 낙선은 했지만 14대 총선때 강남을구의 공천을 주었을 만큼의 「배려」도 있었다.
이번 김 회장의 발탁을 두고 그의 출신지가 대구임을 들어 TK 인사들에 대한 현 정권의 「태도변화」를 알리는 「봄기운」이라고 해석하는 세간의 시각도 있지만,그보다는 대선 때의 인연과 대통령 주변의 천거가 김 회장을 발탁토록 했다고 상공자원부 등은 강조하고 있다.
김 회장은 그간 학계·관계·정계를 두루 거치며 폭넓은 「변신」을 해온 끝에 이번에 다시 기업경영인으로 모습을 달리하게 됐다.
70년대말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때는 경제기획원과 함께 80년대초의 안정화시책 입안을 거들었고,이후 재무부장관 때는 부실기업 정리라는 난제중의 난제에 손을 댔으며 부총리 시절에는 흑자관리와 씨름하기도 했다.
정치적 판단력이 강하고 배짱도 두둑해 그가 배를 슬슬 쓸며 만족스런 웃음을 짓고 있을 때는 틀림없이 몇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인 구상을 거의 끝마치고 있을 때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자질구레한 일은 아예 쳐다보기도 싫어하지만,인사권한 등을 십분 활용하며 조직을 장악하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이번에 포철도 대폭 물갈이부터 손을 댈 가능성이 크다.
벌써 김 회장이 첫 출근하는 7일 주총에선 회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정관 개정이 예정되어있기도 했다.
8일 출근직전 『뜻밖에 「큰자리」를 맡아 어깨가 무겁다』고 잠깐 입을 연 김 회장은 『열심히 하겠다는 것 말고 무슨 말을 하겠느냐』면서도 『아이고,잘 지켜봐 주이소』라는 부총리 시절의 「공인 말투」를 벌써 회복하고 있었다.<김수길기자>
◎포철 임직원들 표정/“이통 따내 유임 기대했는데…” 아쉬움/정 회장 주재 마지막 주총 “일사천리”
○…서울 을지로1가 금세기빌딩에 있는 포철 서울사무소는 8일 오전 8시쯤 정명식회장과 조말수사장이 모두 물러나고 외부인사인 김만제회장의 발탁사실이 알려지자 착 가라앉은 분위기.
지난 26년동안 박태준 왕국이라 불리던 포철은 처음으로 외부인사를 최고 경영자로 맞은 셈인데 포철의 한 직원은 『제2이동통신 지배사업자로 선정되는 등 최근에는 정 회장이나 조 사장중 한사람이 유임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했는데…』라며 당혹스런 표정.
○…정 회장이 침착한 표정으로 마지막으로 주재한 포항 본사에서의 주총은 미리 마련된 각본에 따라 45분동안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며 주주총회가 TV 폐쇄회로로 중계된 서울사무소와 광양제철소 회의실에는 모두 10여명의 부·과장들만이 나와 침통한 표정으로 이를 지켜봤다.
정 회장은 25분간에 걸친 인사말의 말미에서 제2이동통신 지배주주로 선정된 사실을 언급했고,주총이 끝난 직후 그동안 불화설이 나돌던 조 사장과 함께 앞자리에 앉은 임원들과 일일이 작별 악수.
○…김만제 신임회장은 이날 오전 포항행 비행기가 기상사정으로 결항되는 바람에 김해공항으로 내려가 자동차로 포항으로 이동하던 중이어서 주총에서 참석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당초 주총에서 선보일 예정이던 신임 이사진 구성도 김 회장이 포철 내부사정을 어느정도 파악한뒤 시간을 두고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사무소는 주총이 끝날 무렵인 오전 9시30분쯤 상공자원부에서 나온 발표문이 전달됐는데 일부 직원은 『경영불화 등 현재 포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포철내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구절이 마음에 걸리는 표정이었으나 『추가로 외부인사 영입은 없을 것』이라는데서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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