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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축협 회장 직선제 문제점/표배경 회장권한 너무 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지난 선거뒤 조합원 반목 골 깊어져/연임제한 없어 「장기집권」 가능성도
한호선 농협회장에 대한 영장신청은 한 회장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회장 직선제라는 구조가 발단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 회장 이전에도 직선으로 당선된 홍종문 수협회장(90년)과 명의식 축협회장(93년)이 금품살포·뇌물수수 혐의로 각각 구속됐다. 민선으로 당선된 초대회장 모두가 구속된 사태를 우연의 일치나 개인적인 타락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따라 경영조직의 장을 직선으로 뽑아야 하느나』는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농·수·축협은 본연의 기능인 구매·판매·공제 외에도 신용사업 등 각종 수익사업을 복잡하게 담당하고 있다. 농·수·축협은 일종의 기업인 셈인데 회장을 직선으로 뽑고 있으니 결국 기업총수를 사원들이 선거로 뽑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다.
더욱이 회장 한 사람에게 인사·예산·사업 등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어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선회장은 표를 든든한 배경으로 삼고 있으므로 조직내부에서 합리적인 통제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연임 제한조항도 없어 1인 장기집권으로 인한 부작용도 막을 수 없는 실정이다.
농협대학의 한 관계자는 『직선제는 조합원의 참여의식과 주인의식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으나 경제적으로는 불합리한 점이 많다』며 『굳이 직선으로 하려면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고 회장은 조직의 상징적인 리더역할만 맡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과열·타락선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선거때만 되면 국회의원 선거를 뺨칠 정도로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후보들끼리 흑색선전을 해대거나 대의원들에게 선심공세를 펴는 것은 예사인데,지난달 농협 조합장 선거에서도 불법선거 행위로 1백65명이 적발돼 이 가운데 22명이 구속되는 사태를 빚었다.
말만 협동조합이지 선거한번 치르고 나면 반목과 불신만 깊어진다는 것이 농협 관계자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회장으로 당선돼도 청렴하게 일하기 힘들다. 선거때 표를 몰아준 사람의 청탁을 뿌리치기 어려운데다 돈을 많이 쓴 만큼 뽑아야겠다는 심리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선회장의 구속은 모두 이같은 타락·과열선거에서부터 싹이 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직선제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한마디로 말해 민주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농·수·축협 지도부도 처음부터 직선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맨 처음 법개정을 연구했던 농협지도부는 87년부터 대의원회의를 통한 간선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민주화 바람으로 일반 조합원들은 무조건 직선제를 요구했고 지도부도 이를 설득하지 못했다. 여기에다 여소야대의 국회도 이같은 분위기에 이끌려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89년 직선제로 법을 개정하고 말았다.
일본의 경우 20명 정도의 임원이 마치 추기경들이 교황을 뽑듯이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을 회장으로 추대하는 호선제로 운영되고 있다. 회장은 또 조합장 이사로 불린다. 회장도 이사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뜻이다. 또 경영에 대한 실무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겨두고 있다. 협동조합이 잘 발달돼 있는 북구에서도 간선제로 회장을 뽑고 있다.
정부는 회장직선제의 병폐를 인정하고 있으나 당장 간선제로 고치는 것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당분간 직선제를 유지하되 장기적으로 개선방안을 찾을 방침이다.
따라서 이달 23일 예정된 농협중앙회장 선거도 그동안 드러난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직선제로 치러지게 됐다.<남윤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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