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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을살리자>19.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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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파 값이 최근 물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폭등하자 정부는 가격안정을 위해 생파 3천t을 긴급 수입하기로 했다.국내 최초로생파가 수입되게 된 것이다.그러나 정작 농민들과 종묘회사들은 다른 농산물 시장개방에서 보였던 것 같은 불안감을 거의 나타내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대파.쪽파를 재배하는 나라가 중국.일본에 불과한데다 파의 특성상 냉동선을 이용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수입파가 국내 시장을 크게 잠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파는 양파에 밀려 전세계적으로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재배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특유의 향기와 맛 때문에 주로 양념 채소로 사용해 오고 있다.
특히 朝鮮시대에는 立春날 먹는 時食으로 다섯가지 매콤한 나물을 무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었고,그 재료로는 지역에 따라 파.마늘.여뀌.쑥.산개.솔.무.미나리중 다섯가지를 골랐는데 대부분 파를 첫번째로 사용할 정도로 중요한 채 소로 여겨왔다. 파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농작물이다.
현재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는 파는 줄기의 하얀 부분을 이용하는 대파,전체를 먹는 쪽파,잎을 잘라 먹는 잎파등 크게 세가지. 이중 요즘 가장 많이 먹는 대파는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해 도입된 일본종 계열이다.
수백년 이상 국내에서 재배되면서 나름대로 독특한 유전인자를 형성한 토종 파는 잎파 계열과 쪽파 두종류.
그러나 변변한 논문 한편 없을 정도로 전문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아 토종의 종류나 특성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지역마다 재배되던 독특한 토종파들이 거의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으나 현황마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실정이다.
경북대 李愚升교수(61.원예학과)는『크게 잎파와 쪽파로 나뉘는 토종파중 쪽파는 특성분화가 거의 안된 단일종으로 추정되며 잎파는 지역에 따라 수많은 품종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수집.
보전및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어떤 종류의 토 종 파가 있었는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李교수는 또『간혹 산간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토종 파로 추정돼 것들을 볼 수는 있으나 대체로 멸종된 것으로 추정돼 지금이라도 정부 기관등에서 유전자원 보전차원에서 실태파악과 수집.보전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와 종묘업계,농민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일본에서 대파 품종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국내에서 널리 재배됐던 토종파중 대표적인 파는 당시 조선파로 불리던 잎파계열의「서울파」였다.
파 종자 전문 종묘회사인 대농종묘 柳東烈부장(46)은『서울.
경기도등 중부 지역에서 주로 심어졌던 서울파는 향기와 질감 등이 대파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뛰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6월에 파종하는 서울파는 10월 김장철에 맞춰 수확했으며,수확하지 않은 파는 밭에서 그대로 한겨울을 지내고 다음해 4월 실파로 수확해 시장에 내다 파는등 다른 파와는 달리 월동력과 내병성이 뛰어난 품종이었다.
『50여년 동안 파농사를 지어 왔다』는 李濟天씨(70.고양시동산동)는 『대파는 맨밭에서 겨울을 나게 되면 10~20%밖에살아남지 못하는데 비해 서울파는 90%이상 거뜬히 살아남아 겨울을 난 모든 채소들이 그렇듯이 특유의 단맛마저 지니고 있었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또 11월께 늦게 수확한 서울파는 겨우내 흙구덩이를 파 반지하식으로 만든 움속에 묻어두면 햇빛을 보지 못하면서도 노랗게 자라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움파」라는 이름으로 시장에서 팔리기도 했었다.
싱싱한 채소가 귀하던 시절,움파는 50대 이상이면 누구나 먹어봤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 강원도영월군북면 일대에서 재배됐던 「영월파」와 경북 지방의 「한로파」,울릉도의 「울릉파」,강화도의 「강화파」 등도 잎파 계열의 토종파였으며 이 역시 대파와 비교해 월동력과 향기,부드러운 질감이 뛰어났었다.
이밖에도 지역마다 다양한 토종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수확성과 시장성이 우수한 대파 품종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70년대초를 전후해 거의 자취를 감춰 버렸다.
다만 대농종묘에서 서울파의 특성과 유사한 개량종인 「서울백파」를 만들어 종자를 보급하고 있으나 뿌리 부분과 꽃봉오리에 붉은색이 비쳤던 서울파와는 달리 하얀색을 띄는등 상당한 차이가 난다. 잎파와는 달리 씨대신 뿌리의 새끼쪽을 떼 번식시킨다고 해서 이름붙여진 쪽파는 재배기간이 두세달 정도에 불과하며,대파에 비해 저장성이 뛰어나고 향기가 일품이어서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토종파다.
쪽파는 특히 김치를 담글때 넣으면 김치가 빨리 쉬지 않는 등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쪽파의 주산지는 제주도와 전라남.북도 일대지만 종자는 90% 이상을 제주도에서 공급하고 있다.
중국 서부 또는 시베리아가 원산지로 추정되고 있는 파가 국내에 도입된 시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高麗 이전인 三國時代나 統一新羅時代로 보고 있다.
이는 高麗때 발간된『鄕藥救急方』과 高麗史(仁宗9年6月條)에 파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특히 李奎報가 지은『東國李相國集』중 家圃六詠에는 『파가 술안주로 이용되며 피리로도 쓰인다』고 기록돼 있는 점으로 미뤄 高麗시대에 이미 파의 재배가 일반화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朝鮮시대까지 중국식 명칭인 총(총)으로 기록돼 온 파에는 단백질과 당분이 많이 함유돼 있으며,녹색부분에는 비타민 A.C와함께 칼슘등 무기질의 영양소가 풍부한 양념채소였다.
***단백질.칼슘 많아 파는 또 고기와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주고 독성을 중화시키는 특성도 지니고 있어 고기와 생선을 구울때 필수양념이 돼 왔다.
또 양념 외에도 파전.파강회.파나물.파김치.파누름적.파장아찌.파산적 등 다양한 요리재료로 쓰이고 있으며,藥性도 지니고 있어 한방과 민간요법 등에서 각종 질병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東醫寶鑑』에는 『파는 風濕.마비통을 그치게 하며 腹痛.頭痛.耳聾.痔漏를 다스리고,파즙은 瘀血을 흩어 버리고 통증을 멎게 한다』고 적어 놓고 있다.
민간요법에서는 호흡기와 간장질환.위장병 등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파 특유의 자극성 향기를 내는 「유화알리루」 성분은 신경을 자극해 소화액의 분비를 촉진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 식욕부진과 피로회복을 돕고,감기에 걸렸을 때는 메좁쌀에 파를 썰어 넣고 죽을 쑤어 먹은 뒤 땀을 내 감기를 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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