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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조직범죄 각국 비상(경찰과 시민사회:1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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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 야쿠자·홍콩 갱등 한국 넘봐/「강건너 불」 아닌 「발등의 불」로/검은돈·조직원 곳곳서 유입 징후
지난해 여름 미국 시사종합지 타임은 세계의 조직범죄를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다. 국제조직범죄의 위협을 경고하며 타임지가 세계 3대 범죄조직으로 꼽은 것이 미국·이탈리아의 마피아,일본의 야쿠자,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베일에 싸인 중국계 갱단 트라이아드.
그중에서도 일명 삼합회라고 불리는 트라이아드가 미국 등 전세계적으로 가장 위험한 신흥폭력단으로 급성장하고 있다고 분석됐다. 트라이아드는 홍콩·대만·싱가포르 등 동남아 일대를 무대로 암약하는 국제범죄조직이며 특히 홍콩갱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흉포하다.
권총·수류탄으로 무장한채 백주에 은행·보석상을 털며 예사로 시내 중심가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권총은 우리돈 2만원에,수류탄은 이보다 훨씬 싼 5천만원에 암거래되는 중국 본토에서 온갖 무기를 밀수입,갱단이 경찰 못지않게 중무장돼 있기 때문이다.
강력범죄가 최고조에 달했던 91년의 경우 권총·수류탄 등이 사용된 강도사건은 무려 5백40여건. 매일 1∼2건꼴로 권총·수류탄 강도사건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경찰과 권총을 쏘며 시가전을 벌이는 홍콩의 갱영화가 와서 보니 바로 현실이었다』고 현지교포들은 말한다. 이처럼 가공할 트라이아드에 맞서는 홍콩경찰도 그들 못지 않게 강경하고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강력사건이 발생할 경우 무엇보다 트라이아드의 개입여부부터 조사,혐의가 드러나면 가중처벌하고 있다.
이와함께 중·고등학교에 트라이아드 세력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청소년경찰대」(JPC)라는 학생자치서클을 만들어 범죄예방을 계몽하고 있으며 상인들에겐 트라이아드가 금품을 요구해올 경우 즉시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
그럼에도 트라이아드의 위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홍콩 최고의 트라이아드 수사통인 입파우폭(엽포복) 경감은 『현재 홍콩에서 저질러지는 모든 범죄의 70%가 트라이아드와 관련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홍콩경찰은 조직폭력의 심장부에 철퇴를 가할 수 있는 「조직범죄 등에 관한 법률」을 92년 7월 입안,의회 통과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법은 트라이아드에 대해 근본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상점·유흥업소에서 돈을 뜯거나 2명 이상이 공동으로 강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를 경우 명백한 반증이 없는한 트라이아드의 조직원으로 인정,엄벌에 처하도록 돼있다. 심지어 트라이아드로 의심되는 경우 영장없이도 가택수사와 체포가 가능하도록 새로운 법률은 허용하고 있다.
일본 역시 야쿠자 소탕작전에 나서 현재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일본경찰은 먼저 야쿠자의 돈을 끊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판단,합법적인 사업일지라도 야쿠자가 돈을 대는 것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엄청난 세금을 부과,조직폭력배들의 자금원을 차단하려 노력중이다.
91년의 경우 야쿠자의 부정소득에 대해 1백5억엔(한화 7백여억원)을 추징했었다. 일본경찰은 또 야쿠자들의 거점으로 이용되는 폭력단 사무소를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강제로 철거,91년엔 모두 1백61개의 야쿠자 사무실이 문을 닫았다.
이와함께 일본은 「폭력단 대책법」을 이미 제정,형법상 처벌외에 행정적 수단까지 동원해 야쿠자들의 활동을 규제중이다. 92년 3월부터 시행된 이 법에 의해 야쿠자 3대 파벌인 야마구치구미(산구조)·이나카와카이(도천회)·스미요시카이(주길회) 등을 포함,모두 15개의 야쿠자 조직을 지정 폭력단으로 지목한 일본경찰은 사무실 설치·임의단체 결성 등 모든 활동을 합법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됐다.
즉 위세를 과시해 금품을 뜯어내는 전형적 범죄는 물론 합법적인 회사 등으로 위장한 폭력조직을 행정적 수단으로 퇴치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초강경 법안들이 국제적 조직범죄를 뿌리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적어도 세력을 상당히 위축시킬 수 있을 것으로 홍콩·일본 경찰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활동이 어려워질 조직폭력배들이 해외,특히 한국과 같은 아시아 인근 국가로 눈을 돌릴 것이 확실하다는데 있다. 야쿠자들에게 가장 유망한 시장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한국. 야쿠자들의 검은 돈이 부동산 투기·유흥업소 투자 등을 통해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한일 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야쿠자들은 국내 폭력배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80년대말부터 국내 폭력배와 야쿠자간의 제휴는 시작됐다. 88년 11월 부산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두목 이강환이 야마구치구미 산하 가네야마구미 두목과 의형제를 맺었으며,89년 9월엔 부산 백호파 조직원 4명이 오사카에서 야쿠자교육을 받고 돌아오기도 했다.
트라이아드 역시 홍콩경찰의 퇴치작전이 본격화되면 국제범죄를 통한 돈벌이에 더욱 혈안이 될 것이 뻔하며 한국도 범죄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92년 12월에는 트라이아드 조직원이 2백20억원어치의 헤로인 23㎏을 미국으로 밀반입하면서 우리나라를 우회 통로로 이용하려다 적발된 적도 있었다.
엽 경감은 『한국에도 다수의 트라이아드 조직원이 활약중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징후가 나타나진 않았지만 야쿠자·트라이아드 등 국제적 조직범죄는 더이상 강건너 불이 아니다.
이들이 우리 사회에 처음부터 발을 못붙이게 하기 위해선 외국경찰 및 인터폴과의 긴밀한 협조관계가 필수적이며 이것이 우리 경찰이 하루빨리 국제화되어야 하는 절박한 이유인 것이다.
◎「트라이아드」란/300년전 청대항 한족 결사조직이 효시/2차대전후 변질… 세계 최대 폭력단체로
트라이아드의 역사는 3백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70년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에서 반기를 든 한족들이 명나라를 재건키 위해 만든 비밀결사조직인 백련교·홍문 등이 바로 트라이아드,즉 삼합회의 효시다.
삼합회는 1911년 청나라가 망하면서 전 중국대륙이 좌우투쟁의 혼란에 빠지자 우파의 국민당편에 서서 공산당과 투쟁했다. 장개석이 삼합회의 멤버일 정도로 삼합회는 단순한 폭력단체 이상의 역사적 전통을 갖고 있다. 이같은 삼합회가 2차대전이후 변질돼 세계최대의 폭력단체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청조 이래의 각종 탄압을 피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비밀스런 수신호·암호를 비롯해 엄격한 내부규율·종교에 가까운 의식 등이 발달했으며 이것들이 현재까지 고스란히 내려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트라이아드는 이러한 조직력과 전통을 바탕으로 상점·유흥업소 등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전통적인 방법외에도 기업상대 협박·고리대금업·매춘·입찰개입 등에까지 손을 뻗쳐 엄청난 검은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
트라이아드는 유사시 권총·수류탄은 물론 기관단총까지 동원해 상대방을 사살할 정도로 잔인하지만 동시에 치밀한 조직력도 갖고 있다.
구속된 단원들의 뒤를 돌봐주는 것은 물론 조직원들내에 의료보험·연금·가족수당까지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홍콩경찰은 분석하고 있다. 규모도 세계최대로 마피아가 2만2천여명,야쿠자가 8만명인데 비해 트라이아드는 무려 1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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