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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파티와 ‘백조 다이어트’

중앙일보

입력

토요일 저녁 8시, 청담동 프리마 호텔 길 건너편이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인들로 북적인다. 무슨 거창한 시상식이라도 있어서 연예인들이 출동했나 싶어 기웃거려봤더니 그건 아니고. 알아 봤더니 요새 청담동에서는 크고 작은 클래식 와인파티가 유행이란다.
일반인들이 할리우드 스타처럼 쫙 빼입고 와인파티를 즐긴다니 고것 참 근사하다 싶어,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누군가 점잖게 다가와 단호히 제지한다. 사진 촬영은 그 어떤 경우에도 철저히 금지돼 있단다. 철통같은 초상권 보호에 ‘혹시 이상한 데 아니야?’ 의심이 든다면 안심하시라. 와인시음과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이런 종류의 파티는 대게 건강한 마인드를 가진 개인들이 주최하며, 호응도 좋아서 최근 꾸준히 입지를 굳혀나가고 있는 추세다.

파티문화 공급이 현대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스스로 ‘파티 왕’이 되겠다고 나선 선구자들이 있으니 유명 파티쉐부터 패션디자이너, 일반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한 달 평균 서너 차례 열린다는 파티 현장에 직접 가보니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고급한 열기로 여러 종류의 와인을 즐기고 있었다. 파티장 내부는 한껏 멋을 낸 남녀들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인데, 복장규율을 어겨 미처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파티용으로 꾸며진 고급건물의 실내며 옥상까지 가득 매우고 있는 화려한 인파는 대략 300~400백 명 정도.
회비는 단돈 2만원 내외. 특별한 와인을 선보이는 날에는 플러스알파가 있지만, 깔끔하게 공급되는 안주류와 수입산 와인 잔, 격식을 갖춘 서비스 등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다. 건전한 의도로 진화해온 파티인 만큼 불합리한 연회비나 그 용도가 모호한 옵션비용 같은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파티를 즐기다 문득 생각해보니 마땅히 앉아 있을만한 공간이 없다. 어쩌라는 거지? ‘건강한 만남을 최대한 많이 갖는 것이 클래식 파티의 묘미 아니겠냐’며 주최 측에서 일부러 휴식 공간을 제한했단다. 허긴, 기껏 차려입고 나와서 의자 속에 파묻혀 있는 것도 넌센스다. 스스로 위안 삼으며 애써 괜찮은 척 하려니 이건 마치, 수면 밑의 두 발을 미치도록 휘저어야 하는 백조 꼴이다. 뭐 그렇다 해도, 러닝머신 위에서 10분 이상을 버티지 못하는 내가 두 세 시간 내내 선 채로도 즐거울 수 있다니 이거 썩 괜찮은 이색 다이어트인 것만은 확실하다.
불편한 기미 없이 마냥 즐거워하는 수백 명의 파티 객들이 다소 의아해 유독 돋보이는 여인을 붙들고 “다리 안 아프세요?”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여인,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하는 말이 스탠딩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나름의 노하우가 있단다. 스타일을 코디할 때 지나치게 높은 굽은 피하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 꼿꼿한 자세보다는 편안하게 자세를 바꿔가며 틈틈이 휴식을 취해준다는 것, 그리고 구석진 곳에 마련된 임시 휴게실을 미리 확인해두고 가끔 들어가 긴장을 푸는 것도 초보자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복장 또한 너무 근사해 명품이라도 빼입었나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란다. 파티 마니아가 명품만 고집했다간 집안 거덜 난다는 지당하신 말씀. 몇 만원 내외의 제품으로도 얼마든지 화려한 콘셉트로 코디할 수 있다니 역시 멋쟁이는 다르다.
입장료만 지불하면 매력적인 남녀들과 어울리며 훌륭한 와인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니 그간에 이런 기회에 목말랐던 사람들에겐 희소식일 터. 군살은 늘어가고 다이어트는 힘들고 게다가 자신의 주말이 지루하다고 생각된다면 지금 당장 파티복을 장만하자. 혹시 아는가,스커트 밑으로 두 다리 열심히 저어가며 와인 잔을 부딪치는 사이 싱싱한 월척(?)이라도 낚을지?
참고로, 초상권 보호에 철저한 청담동의 바로 그 와인파티가 궁금하다면?
http://cafe.daum.net/wineparty

설은영 객원기자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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