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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좀환자 K씨 “나도 발지압로를 걷고 싶은데, 안 되겠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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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맑은 날 오후, 아이들과 함께 탄천을 걷다가 발견한 발지압 산책로. 하지만 그 앞에서 양말을 못 벗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K씨. 무좀이 심한 K씨는 밝은 대낮에 맨발 드러내놓기가 부끄럽다. 혹여 나 때문에 내 뒷사람이 무좀에 옮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아이들은 함께 걷자고 조르고, K씨는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서울대학교 의학대학에서 실시한 연구통계에 따르면 성인들의 절반 이상이 무좀을 앓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은 양말 벗기를 꺼려할 만큼 심하다고 한다. 이미 아는 것처럼 무좀은 여름에 증상이 더 심해진다. 발톱사이에서 각질이 일고 피가 나기는 예사. 냄새가 많이 나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자연과 하나 되기 위한 맨발 걷기’는 그저 먼 나라의 얘기일 뿐.
하지만 무좀이 좀 있다고 양말도 마음 놓고 못 벋어서야 어디 세상이 너무 각박해서 살겠는가. 까짓 무좀, 해결하면 될 것 아닌가.

남녀 모두에게 평등한 무좀

무좀은 따뜻하고 축축한 곳을 좋아해서 하루 종일 꽉 맞는 구두나 하이힐을 신는 사람, 습도가 놓은 곳에서 생활하거나 땀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군대에서 무좀에 많이 걸리는 이유도 고온다습하고 통풍이 안 되는 군화를 신고 땀까지 흘리며 행군하는 환경 때문이다. 여성의 경우도 비슷하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발가락 사이에는 조그만 틈도 없다.
이렇듯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무좀의 또 다른 특성은 홍익인간(물론 인간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순전히 무좀의 관점에서)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즉 전염성이 있다. 많은 남자들이 군대 가기 전까지는 무좀이 뭔지 잘 몰랐다가, 군대에 간 순간부터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가 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무좀은 목욕탕, 수영장, 찜질방, 헬스클럽 등의 공공장소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빗, 발판, 슬리퍼 마룻바닥 등을 통해서도 옮을 수 있다.

발의 무좀이 얼굴까지 간다?

무좀은 증세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발가락 사이가 짓무르는 ‘지간형’, 물집이 생기는 ‘수포형’, 피부껍질이 하얗게 벗겨지는 ‘인설형’.
워낙 흔한 질병인 만큼 사람마다 알고 있는 민간요법도 갖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식초나 빙초산을 희석시킨 뒤 발을 담는 방법인데, 이 방법은 가려움증과 물집을 줄이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와는 거리가 멀다. 전문의들은 민간요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가톨릭의대 피부과 조백기 교수는 “최근에는 동남아지역을 다녀온 관광객들이 출처불명의 무좀약을 사서 바른 뒤 염증 등의 부작용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정확한 조기진단과 치료만이 완치의 지름길이라고 설명한다.
무좀은 가렵다고 해서 긁을수록 더 악화되며, 손으로 긁은 부위의 피부가 헐면 감염부위가 그만큼 넓어지고, 운이 나쁘면 손으로 무좀이 옮을 수도 있다. 특히 무좀균이 묻은 손으로 얼굴을 만질 경우, 얼굴은 물론이고 머리와 어깨 등 우리 몸 어디에나 무좀이 생길 수 있다.

무좀환자 K씨, 전문의와 상담하다

K : 너무 가렵다. 얼른 치료하고 싶은데 약만 먹으면 안 될까?
전문의 : 약만 먹는다고 바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무좀은 상당한 끈기를 가지고 치료해야 한다. 약을 복용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증상이 사라지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6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간혹 무좀약 복용으로 간 기능에 이상이 올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한 후 결정해야 한다.
K : 6주? 그때까지 어떻게 참나?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더 빨리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전문의 : …그냥 무좀이랑 같이 사는 게 낫겠다.
K : 무좀 있는 사람들은 목욕탕이나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양말을 못 벗는다. 심지어 집에서도 차별대우를 받는다. 부끄러워서도 그렇지만, 정말 무좀이 그렇게 전염성이 강한가?
전문의 : 일반적으로 어디를 가든 사람의 맨발이 닿는 곳이라면 무좀이 감염될 위험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좀 오버다. 집에서는 당연히 무좀환자 전용수건부터 양말까지 있어야 한다.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무좀 있는 사람이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녀봐라. 당연히 식구들 다 같이 무좀에 걸린다. 차별대우 받고 사는 게 당연하다.
K : 뭐, 그렇다면…. 그럼 야외에 있는 발지압로의 경우는 어떤가? 통풍이 잘 되는 맨발걷기가 무좀치료에 좋다는데, 발지압로를 맨발로 걷자니 왠지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다. 혹시나 전염될 수도 있지 않은가?
전문의 : 목욕탕이나 찜질방처럼 밀폐된 곳 보다는 전염될 위험이 훨씬 덜하다. 실외라면 습기도 덜해서 일반적인 곳보다는 감염빈도가 훨씬 낮다. 그리고 에티켓으로 양말을 신고 걷는다면 다른 사람한테 무좀을 옮길 일은 훨씬 적어진다.

손희성 인턴기자 hssoh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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