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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만든 「순교자」(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세상에서 적과 친구가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람이었지요.』
『일부에선 그를 색안경을 쓰고 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사이비종교의 폐해에 대해 일반사람들이 잘 몰랐던 것도 사실이구요.』
21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상계동 동부적십자혈액원 광장에서는 탁명환씨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장례식에 참가한 유가족과 각계 인사 4백여명은 그동안 탁씨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왜 사이비종교의 폐해를 파헤치려 했는가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사회적·정치적 불안을 등에 업고 많은 신흥 사이비종교 단체들이 활개를 치면서 이에 현혹된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살해되는 등의 피해사례가 계속됐지요.』
이들은 공권력이나 언론이 그동안 사이비종교 문제를 얼마나 철저히 외면에 왔는가를 그의 죽음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평범한 시민이라고 밝힌 40대 남자는 『탁씨기 숨지기전까지만해도 강건너 불 보듯하던 사이비종교에 관한 문제가 뒤늦게나마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살 직전까지 탁씨가 심혈을 기울여 파헤치려했던 영생교 피해자중 한사람이라는 조모씨(45)는 『탁선생님의 죽음을 잘못되고 썩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회가 탁선생을 「순교자」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야기를 듣던 탁씨의 둘째아들 지원씨가 앞으로 어떤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오늘의 아픔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모인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방정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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