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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 story] 얼쑤! 갑신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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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아직 멀었건만, 눈 온 마을은 벌써 설 같았습니다.

눈발이 흩뿌리기 시작한 저녁엔 강강술래 소리가 마을 한가득 퍼졌습니다.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도는 하얀 한복이 어슴푸레 보입니다.

파란 배추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다음날엔 마을 공터에서 윷판이 벌어졌습니다. 어른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밤윷을 간장 종지에 넣고 흔들어 하늘 높이 던질 때마다 "윷이야" "모야"소리가 터졌습니다. "개루 잡어!"라는 말쓰기 훈수에 곁에 있던 진돗개 누렁이가 움찔했던 건 구경하는 기자의 착각이었을까요. 쿵떡쿵떡 떡메를 치던 할아버지가 힘에 부쳐 숨을 돌리자 떡만 들여다보던 아이는 그만 치고 얼른 고물 뿌려 먹자고 성화입니다. 논두렁에는 농악대가 떴습니다. 어! 상모 돌리던 홍복동(69) 할아버지가 비틀비틀하더니 그만 물빠진 논으로 철퍼덕! 폭소가 터져도 꽹과리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12~13일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의 풍경이 이랬습니다. 남도에는 꽃소식처럼 설도 일찍 오는 걸까요? 설은 한참 이르지만 농사일 안 바쁘면 그렇게들 논답니다. 하긴 '한 집 건너 명창, 두 집 건너 명고수(鼓手)'라는 '우리 소리의 고장'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처마 밑에선 설을 보내고 외지로 돌아가는 자식들의 짐보퉁이 한구석에 넣어줄 자반들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한남례(70)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손수 따온 굴을 까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굴을 잔뜩 넣고 끓인 떡국을 맛나게 먹을 손자손녀 생각에 절로 노랫가락이 흘러 나옵니다. 소포리에는 이렇게 자식들 기다리는 마음이 설보다 먼저 와 있었습니다.

week&이 남도에서 어머님.아버님들께 조금 이른 설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W 2, 3면

진도=권혁주.구희령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설은 아직 멀었건만, 눈 온 마을은 벌써 설 같았습니다.

눈발이 흩뿌리기 시작한 저녁엔 강강술래 소리가 마을 한가득 퍼졌습니다.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도는 하얀 한복이 어슴푸레 보입니다.

파란 배추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다음날엔 마을 공터에서 윷판이 벌어졌습니다. 어른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한 밤윷을 간장 종지에 넣고 흔들어 하늘 높이 던질 때마다 "윷이야" "모야"소리가 터졌습니다. "개루 잡어!"라는 말쓰기 훈수에 곁에 있던 진돗개 누렁이가 움찔했던 건 구경하는 기자의 착각이었을까요. 쿵떡쿵떡 떡메를 치던 할아버지가 힘에 부쳐 숨을 돌리자 떡만 들여다보던 아이는 그만 치고 얼른 고물 뿌려 먹자고 성화입니다. 논두렁에는 농악대가 떴습니다. 어! 상모 돌리던 홍복동(69) 할아버지가 비틀비틀하더니 그만 물빠진 논으로 철퍼덕! 폭소가 터져도 꽹과리 소리는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12~13일 전남 진도군 지산면 소포리의 풍경이 이랬습니다. 남도에는 꽃소식처럼 설도 일찍 오는 걸까요? 설은 한참 이르지만 농사일 안 바쁘면 그렇게들 논답니다. 하긴 '한 집 건너 명창, 두 집 건너 명고수(鼓手)'라는 '우리 소리의 고장'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처마 밑에선 설을 보내고 외지로 돌아가는 자식들의 짐보퉁이 한구석에 넣어줄 자반들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한남례(70)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손수 따온 굴을 까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굴을 잔뜩 넣고 끓인 떡국을 맛나게 먹을 손자손녀 생각에 절로 노랫가락이 흘러 나옵니다. 소포리에는 이렇게 자식들 기다리는 마음이 설보다 먼저 와 있었습니다.

week&이 남도에서 어머님.아버님들께 조금 이른 설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도=권혁주.구희령 기자 woongj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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