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의원 대미외교 출발전 홍보만 요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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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어 부통령·UN총장 면담” 빈말 그쳐/이 대표 친서 국무장관에 전달도 무산/이미지 높이기 급급 실상파악 못한 탓
최근 잇따른 민주당 의원들의 대미 외교활동이 당초 호언과는 달리 미정부 요인과의 면담이 무산되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미국을 방문중인 이부영 최고위원·제정구의원 등은 당초 앨 고어 미 부통령과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 북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하겠다는 면담일정표의 보도자료를 사전에 배포했다. 그러나 이들은 고어 부통령을 못만났고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 면담계획도 별로 진전이 없다는 전언이다.
민주당은 한미 21세기위원회 회의(워싱턴) 참석차 방미중인 정대철의원이 북핵에 관한 당론을 담은 이기택대표의 친서를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을 거쳐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한다고 발표했다.
16일 출국했던 정 의원은 그러나 17일(미국시간) 첫날 회의에 참석했던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에게 이 대표 친서를 전달하는데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정 의원측은 이에 대해 『동행했던 조순승의원(미 미주리대 교수출신)과 함께 크리스토퍼 장관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잘 안됐고 이튿날 오전 국무부 고위관리에게 상황을 얘기하고 대신 전달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정 의원측은 누구에게 전달했는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고 있다.
사대논쟁까지 야기했던 친서전달명분의 적실성 여부는 차치하고 의원 96명인 한국의 제1야당,그것도 야당 대표명의의 친서가 클린턴에게 전달되기조차 힘든 실상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이해찬·이길재·김원웅의원 등과 함께 워싱턴·시카고·LA를 방문하고 18일 귀국한 김상현의원도 환경문제와 관련해 고어 부통령 면담을 추진했으나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야당 의원들의 외교활동이 이렇듯 끝맺음이 부실한 것은 미국 현지의 실상과 철저한 사전약속의 외교관행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우리 주미 대사의 정례적 상대역이 차관보급이고 외무장관의 방미시에도 사전에 철저한 일정조정 및 합의가 이뤄진다.
그러나 이번 야당 의원들의 경우는 국내의 미 대사관 또는 주미 한국대사관으로부터 확실한 「사전통보」와 확인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면담예정 인사를 언론에 성급히 발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당내 「국제통」들은 『미 부통령과 국무장관은 외국의 야당 정치인을 만나지 않는 것이 관례』라며 『이미 예상됐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번에 방미했던 의원들은 대부분 민주당의 차기 당권주자 또는 대권주자로까지 거명되는 중량급 인사들이라 당내에서는 「야당 외교의 현실」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들이 이전의 야당 관행처럼 자신의 국내에서의 명망만을 믿고 섣불리 미국 거물 면담을 호언한 것은 이미지 제고용이 아니었느냐는 부정적 평가마저 당내 일부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실제 미국내 교민후원회 조직 등 「개인의 실리」에 무게를 두었으면서도 방미 선전효과를 증폭하기 위해 「크리스토퍼 국무·고어 부통령」 등이 남발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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