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세계新으로 징크스 부순 잰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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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세계최고의 스프린터 댄 잰슨(28.미국)은 하루종일 빙판 위를 달렸고 황색특급 金潤萬(21.고려대)은 겹친 불운에 울고 또 울어야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1천m 레이스가 벌어진 18일 오후10시(한국시간)의 하마르올림픽홀.
바이킹 선체를 뒤집어놓은 듯한 독특한 양식 때문에 일명 바이킹링크로도 불리는 이곳에서 92알베르빌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윤만은 제2조의 아웃코스에서 잔뜩 몸을 웅크렸다.
출발총성과 함께 이를 악문 金은 스타트 부진이란 고질적 약점을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첫2백m를 16초75의 총알스피드로 주파,메달에의 벅찬기대를 부풀렸다.
그러나 아뿔싸,흥분도 잠시.
인코스로 魔의 첫바퀴 제4코너를 돌던 그룬데 뇨스(노르웨이)가 거칠게 미끄러지며 날을 세운채 金의 앞을 가로막았다.
곡예점프라도 하듯 껑충 뛰어 위험은 피했지만 5백m 레이스의악몽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똑같은 코너에서 5백m에 이어 또다시 똑같은 홈링크의 노르웨이 선수에 의해 방해를 받은 것이다.
리듬이 끊긴채 20조를 더 기다려 치러야했던 김빠진 막판 레이스는 이미 등위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 4조로 출발한 비운의 빙판황제 잰슨은 3전4기의 올림픽도전 마지막무대인 이날 마침내「비운」이란 두글자를 떨쳐버리는데성공했다.
최단거리 5백m의 세계 제1인자였지만 88년 캘거리올림픽때 세상을 떠난 누이 제인의 6주기이던 지난14일 5백m에서도 8위에 그쳤던 잰슨.
초반 래프타임 16초71로 뛰쳐나간 잰슨은 아니나 다를까 골인지점을 멀지않게 둔 두번째 바퀴 제3코너를 돌다 움찔,왼손이두차례나 빙판을 스치며 또다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끝내 해냈다. 죽은 누이를 추모,같은 이름으로 지은 한살바기 딸 제인이「아빠 달려요(Go Daddy Go)」란 글자가 수놓인 스웨터를 입고 영문을 몰라할때 성조기를 웃옷에 새긴 아내 로빈은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으며 달려온 남편 잰슨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댄 잰슨』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함성으로 장내가 메워졌고 이후 빙판을 질주하는 잰슨의 모습은 하루종일 이곳 텔리비전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막강실력에도 불구,올림픽에서 만큼은 지독하게도 운이 따르지않았던 잰슨과 알베르빌의 은메달이 자신의 실력이상이었다고 늘 부담스러워한 김윤만의 명암이 교차한 하루였다.
나흘전 잰슨이 5백m에서 또다시 메달권 밖으로 밀려났을때 잰슨의 어머니 게리여사는『아들아,세상에는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더 많단다.네가 헤쳐가야할 인생의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단다』고 실망한 아들을 격려해주었다고 한다.
김윤만은 잰슨보다 무려 일곱살이나 젊고 여전히 한국최고의 스프린터다.
[릴레함메르=劉尙哲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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