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중국 첫 한국어과 교수 丹東사범대 김인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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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中國 遼寧省 丹東市에는 요즘 한국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경제특구로 지정받아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丹東市는 앞으로 본격화될 환서해경제권 시대에 대비해 한국과의 교류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요.』 지난해 10월말부터 丹東市 초청으로 3년제 丹東사범전문대학에서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는 金仁洙씨(70)는 요즘 제2의 인생을 韓中문화교류에 바치기위해 여념이 없다. 『제가 알기로는 중국에서「한국어과」가 설립된 대학은 丹東사범전문대학이 처음입니다.50년대 北京大에「조선어과」가 설립된이래 현재의 북한말을 가르치는「조선어과」는 몇군데 있는 것으로압니다만「한국어과」란 이름의 학과가 생긴 것은 대단 한 변화지요.』 한중문화협회의 추천으로 丹東전문대학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게된 金씨는 말하자면 중국에서 처음 생긴 한국어과의 최초의 한국인 교수인셈이다.
丹東사범대학측에서는 金씨에게 부교수 대우를 해주며 월급으로 1백50위안(약2만2천5백원)을 제의했으나 金씨는 순수한 봉사차원에서 무보수로 강의하고 있다.
金씨는 25년 중국 間島에서 태어나 45년 해방직전 京城大(현 서울대)에 진학하기 위해 19세의 나이로 부모곁을 떠났다.
47년 바라던 京城大법대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이후 영영 부모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는 古稀의 나이에 비록 태어난 間島는 아니지만 중국땅에서 한국어를 강의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르다고 토로한다.
金씨는 중국에서 태어났으나 조선족 마을에서만 살아 어릴때는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으며 정년퇴직후「제2의 인생」을 살면서중국어를 습득해 지금은 수준급이다.
그는 85년 금성기전 제어기기사업부 부장을 끝으로 정년퇴직한후 한중문화협회에서 줄곧 중국어를 익혔으며 90년에는 미련이 남아있는 법학을 공부하기위해 臺灣 국립정치대학 석사과정에 유학하기도 했다.
그러나 92년 韓.臺灣 국교단절로 교수나 동료학생들과 관계가어색해져 유학을 포기했으며 그 와중에 한국어과 교수 제의를 받은 것이다.
『중국의 대학에는 시설.교재가 턱없이 부족합니다.컴퓨터나 복사기는 생각도 할 수 없어요.이럴때 우리 정부나 기업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준다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물론 지원한 기업의 이미지도 대단히 고양될 것입니다.』 韓中경제교류에 앞서 문화교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金씨는 해외청년협력대등을 통해 본격적인 경제교류에 앞서 문화교류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日本이 부러울 정도라며 우리정부의 인식 부족을 안타까워했다.
사비를 털어 우선 국민학교 국어교과서 50부를 사들고 가는 金씨는『모처럼 중국땅에 불기 시작한 한국어바람을 잠재우지 않기위해서라도 뜻있는 기업이나 정부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金國振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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