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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어부가 사라졌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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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13면

서울의 마지막 어부인 김효순(앞쪽)·유금성씨가 실지렁이를 잡는 대형 흡입기와 호스가 설치된 어선에 앉아 지난날을 떠올리고 있다. [신인섭 기자]

“이 배에 내 청춘을 다 쏟아부었는데, 이 짓이 내 삶의 전부인데 어떻게 포기합니까. 피란 와서 여기까지 흘러온 뒤로 물을 떠난 적이 없어요. 저는 물에서 죽을 거란 말입니다.”

40년간 한강서 실지렁이 잡던 김효순·유금성씨, 내수면어업법 적용 못 받아

서울의 마지막 어부 김효순(65)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유금성(57)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들은 40년 넘게 한강에서 어부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어부가 아니다. 지난 5월 어업허가를 갱신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진강에서 참게나 황복을 잡는 어부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서울에 어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9일 망원수영장 뒤 한강에서 이들을 만날 때까지도 그랬다.

세 척의 어선과 바지선(밑바닥이 편평한 운반선)이 눈에 들어왔다. 바지선은 어선의 베이스캠프다. 마치 강물에 떠다니는 집처럼 보인다. 김씨는 “집이나 마찬가지지. 30년 동안 매일같이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는데…”라고 말한다.

바지선에는 가스레인지, 35.56㎝(14인치) Goldstar TV, 아이스박스 등 제법 세간을 갖췄다. 정작 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기계와 굵은 호스 뭉치뿐이다. 어선도 커다란 기계로 꽉 차 있다.

두 사람은 물고기가 아닌 실지렁이를 잡는 어부다. 고개가 갸우뚱거려지지만 ‘실지렁이 채포(採捕) 어업’이라는 문구가 어업허가증에도 또렷이 명시돼 있다.

“서울에도 어부가 있는 줄은 몰랐을 겁니다. 우리는 열여덟, 열아홉 살 때부터 갈퀴로 실지렁이를 잡아다 팔았어요. 뱀장어 양식하는 데 쓰는 거라 수출도 많이 하고 돈벌이가 좋았거든.”

그때는 한강에 실지렁이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갈퀴질을 한 번 하면 실지렁이가 무더기로 달려 나왔다. 1976년 어느 날 어업 단속을 나온 한 공무원이 “이것도 한강에서 잡는 것이니 어업허가를 받고 세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실지렁이 어업 허가를 받았다.

86아시안게임이 열리면서 대대적인 한강 정비사업이 시작됐다. 한강 중 서울 구간이 어로 제한구역이 됐다. 고기를 잡던 95명의 어부가 보상을 받고 어부생활을 그만뒀다. 두 사람을 포함한 10명의 실지렁이 어부에게는 오히려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중요한 수출자원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했지. 이걸 바로 싣고 김포공항으로 가려고 운송 차들이 강기슭에 줄줄이 서 있었다고. 시에서 전용 주차장까지 만들어줬었다니까.”

수요가 폭주해 인분 푸는 흡입기를 미국에서 들여왔다. 배 한 척당 기계 한 대, 인부 10명이 달라붙었다. 대당 하루 1t이 넘게 지렁이가 잡혔다. 한 달이면 집 한 채 값이 나왔다. 87년 미관상 좋지 않으니 해결책을 찾으라는 시의 요구에 따라 바지선을 만들었다. 두 사람이 그때 함께하게 됐다.

“인천에서 기술자를 모셔다가 당시 돈 6000만원을 들였어요. 그때 마포에 119㎡(36평)짜리 아주 좋은 양옥집도 2500만원 했다고.”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뱀장어 양식장들이 중국으로 옮겨갔다. 한강이 맑아지면서 실지렁이가 줄었다. 실지렁이는 더러운 물에 산다. 수출업체도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떠났다. 90년대 후반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띄엄띄엄 기계를 돌려서 양어장이나 수족관 등에 지렁이를 팔았다.

서울시도 달라졌다. 97년 구청에 어업실적을 신고하러 갔더니 “예전처럼 수백t씩 수출하는 것도 아니니 번거롭게 오시지 말라”고 했다. 3년 전부터는 기름값이 더 들어 아예 손을 놓다시피 했다. 그래도 이들은 배를 놓지 못하고 2년마다 허가를 갱신했다. 자식들의 용돈으로는 생활비가 안 돼 인명 구조, 시체 인양 등으로 보충했다.

그런데 지난 5월 한강관리사업본부가 갱신을 거부했다.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7일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때(86년) 다 썩은 어선도 1억원씩 보상받았는데…차라리 그때 그만둘걸.”

이들은 88년 어민소득 증대와 수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산청장 표창장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런 게 다 무슨 소용 있느냐”고 말했다.

내수면어업법에는 자망(걸그물)어업 등 7개 방식만 어업으로 허가한다. 실지렁이 채포 어업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허가가 계속 난 이유는 예외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허가업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 덕분에 실지렁이 어업 허가가 나왔는데 2000년에 이 조항이 없어졌다.

한강사업본부 오형민 생태팀장은 “법적 근거가 없는데 2005년까지 허가가 나간 이유를 모르겠다. 게다가 실제로 실지렁이를 잡지 않는데 허가를 내줄 수 없지 않느냐”고 설명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늦둥이 학비도 안 나오는데 왜 이 배를 붙잡고 있냐고? 우리 아버지가 소 싣고 사람 싣고 다니던 밤섬 사공이었어요. 나도 예닐곱 살 때부터 나룻배 젓고 다녔고. 나는 한강 떠나면 못 살아요. 지렁이가 안 되면 물고기라도 잡게 해주든지….”(유금성)

두 어부는 76년에 처음 받았던 빛바랜 어업허가증을 바라보며 넋두리를 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어로제한 고시 때문에 한강에서는 물고기 어업을 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바지선이 철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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