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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만 떤 「돈봉투」 수사(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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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검찰의 한국자동차보험 돈봉투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는 국민의 상식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선 검찰이 밝혀냈다는 대국회 로비자금의 액수가 사회의 상식에 비해 너무도 적다.
자보의 김택기사장은 위증혐의로 국회 노동위에 의해 고발될지도 모를 위기에 처해 있었다. 자보로선 중대한 문제라 할 이런 일을 수습하는데 동원한 돈이 고작 8백만원이었다는건 누구도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어느 한 국회의원에게 건네려 한 돈이 아니라 국회의원 3명과 서울지방노동청 간부 1명 등 4명에게 전달하려 한 액수의 총액이라는 것이다.
또 16명이나 되는 노동위 소속 국회의원들중 유독 3명만이 대상이 되었다는 것도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민들이 자보 임원들의 진술을 믿기 어렵게 하는 사유는 또 있다. 그것은 그동안 그들의 진술에 진실성과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이다. 사건이 표면화한뒤 자보 박장광상무는 김말룡의원과 점심한 사실조차 부인했다. 그러나 명백한 증거가 드러나자 1백만원을 개인 돈에서 주려했다고 물러섰으나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믿기 어려운 액수이긴 하지만 8백만원의 로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진술도 검찰의 추궁과 물증제시에 의해 7일에야 경우 밝혀진 것이었다. 또 자보측은 회사장부를 감추려했고,일부는 불태워버렸다. 이래서야 자보 임원들의 진술이 맞다고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찰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 과거의 정치권 관련사건들 처리에서 보면 검찰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으레 그런 약속들을 해왔지만 대부분 그런 약속들은 약속으로 끝나버리곤 했다. 이번 사건 역시 그런 식으로 처리되어버려서는 억울한 경우가 있을지도 모를 의혹대상 국회의원의 명예회복은 물론 전체 국회의원의 명예회복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자보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탈법적인 비자금 및 로비자금 조성이 너무도 쉽다는 사실에 놀란다. 금융실명제는 바로 그런 검은 돈을 차단하자는게 목적의 하나였는데도 전혀 그 구실을 못하고 있고,오히려 예금계좌추적이 어렵게 되어 검은 돈의 조성을 쉽게 하는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현재의 선에서 끝나 로비자금의 출처와 행방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다른 기업들에서도 실명제가 종이호랑이임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검찰은 많은 사회적·경제적 비용을 감수하고 단행된 실명제의 정착을 위해서라도 자금추적을 계속해야 하며,현행 실명제의 문제점도 아울러 지적해줄 것을 기대한다.
국민의 의혹이 확대된 만큼 자보측도,국회측도 문제를 현재의 선에서 얼버무리려해서는 안된다. 이번 일을 정치와 검은 돈의 유착을 끊는 마지막 사건으로 만들겠다는 자각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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