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변만 무성한 「돈봉투」 규명/김기봉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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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7일의 국회 노동위원회 회의는 한마디로 본말전도의 이상한 회의였다. 이날 회의는 애초 민주당 김말룡의원에 의해 폭로된 「돈봉투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차원에서 열렸다. 그러나 김 의원에 대한 성토에서 출발한 회의는 점차 나머지 의원들의 자기변론의 장으로 변해갔다.
마침내 김 의원과 같은 당소속인 장석화 노동위원장간의 싸움으로 결말이 나버렸다.
처음 회의가 열리자 장 위원장·민자당의 구천서의원 등은 『김 의원이 근거없는 말로 동료의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 『증인선서를 시키고 시작하자』며 마치 죄인을 심문하는듯한 기세였다.
곡절끝에 위원장과 양당 간사간의 합의로 한국자동차보험의 김택기사장·이창식전무·박장광상무 등 사건의 발단이 된 증인들의 증언에 들어갔다.
그러나 증인들은 노동위원들에게 돈봉투를 주었다는 의혹에서부터 시작해서 예상과는 달리 김 의원에게 돈을 주었다가 돌려받았다는 사실까지 포함해 김 의원의 말을 거의 전면 부인하고 나왔다. 다만 과일바구니 12개만 인사치레로 돌린 적이 있다고 시인했을 뿐이었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기세등등하던 민자당 의원 등은 증인들에게 『일부만이라도 시인해 나머지 의원들에게 쏠린 의혹을 벗겨달라』고 통사정조가 되었다.
『김 의원이 세밀하게 경과를 설명하는데 전부 아니라고 하니 믿을 수 없다. 김 의원이 천재적 시나리오 작가라도 된다는 말인가』(이호정의원) 『1백만∼2백만원 가져갔으나 김 의원이 안받아 되가져왔다고 해야 둘다 사는 것이지. 최소한 어느 정도 가져가 부탁했다는 얘기라도 해야 진실 아니냐』 『조그만 개인회사의 입장을 넘어 김 의원 말과의 오차라도 줄여달라』(박근호의원) 『계속 부인만 하는데 그러면 14대 의원 전체가 괴롭다』 『시원하게 밝힐 것은 밝혀달라』(이현수의원)….
그럼에도 증인들의 태도변화가 없자 의원들은 위원회 이름으로 김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를 결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욕당한 의원 개인의 자격」으로 징계요구서에 연명하는 것도 슬그머니 거절하고 회의를 마쳤다.
한 방청인은 회의장을 떠나면서 『난쟁이 나라에 정상인이 가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법』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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