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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창달에 큰 발자취/85세로 타계한 김상만 명예회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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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인 최초로 영국 명예기사 작위/81년 일선서 물러나 문화사업 주력
26일 타계한 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85)은 한국언론의 창업 제2세대로서 신문경영의 열정과 함께 외교·문화·교육 등에 의욕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동아일보와 경성방직의 창업자인 인촌 김성수선생의 9남4녀중 장남으로 1910년 태어난 그는 선친의 뜻에 따라 49년 동아일보 업무국장으로 신문경영 수업을 시작했다.
55년 인촌 타계직후 동아일보 상무·부사장을 거쳐 71년 사장에 취임한 그는 77년 회장직에 오르기까지 선친이 터를 닦아 키워놓은 동아일보의 사세도약에 온힘을 기울였다.
유신독재시설 「광고파동」 등 정권의 압력속에서도 비판적 언론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김 회장은 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동양방송(TBC)을 빼앗긴 중앙일보와 마찬가지로 동아방송(DBS 라디오)을 잃는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
81년 장남인 김병관 현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난뒤 고인은 교육과 문화·외교분야에 힘을 쏟는 등 폭넓은 사회활동을 벌여왔다.
일본 중앙대 예과와 영국 런던대를 수료한뒤 일본 조도전대 법학부를 졸업한 그는 신문발행외에 한영협회장(64년)·한양로터리클럽 회장(71년)·아시아신문재단(PFA) 회장(76∼90년)·국제신문인협회(IPI) 이사(78∼86년)·고려중앙학원 이사장(82년부터 현재까지) 등을 역임했다.
언론자유를 수호한 공로로 75년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가 주는 「자유의 금펜」 상을 받은 것을 비롯,대한민국 국민훈장·중화민국 문화훈장·명예 영제국 명예코맨더훈장 등을 받았다.
특히 81년 한영 관계증진 등의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받은 영국명예기사(KBE) 작위는 김 회장이 평생 자랑스워한 경력으로 그는 「영국 귀족」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다. 고인은 검소한 생활습관에다 겸양의 삶을 살았으며 한번 정을 준 부하는 끝가지 돌보는 의리도 보였다.
「공선사후」를 신조로 삼았던 고인은 우리나라 언론 창달과 교육발전,문화예술진흥의 한길을 걸어온 것이다.<이현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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