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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폿라이트>러시아판 히틀러 지리노프스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는 맹위를 떨치고 있는 그의 독설과는 어울리지 않게 어린 시절은 매우 고독하고 굴욕적으로 자랐다고 그의 자서전『남으로의 마지막 도약』에서 술회하고 있다.
舊蘇연방국인 중앙아시아 카자흐의 알마아타 태생인 그는 회교 카자흐人에 비해 열악한 생활을 했으며 학교성적에서조차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한다.항상 국외자로 취급당해온 그는 어디엔가 소속되고 남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이러한 불만이 끊임없이 나를 자극했다』고 고백하고『단지정치를 위해 나의 에너지를 아꼈다.인생에 있어 정치야말로 가장흥미로운 것』이라며 정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술회하고 있다.
그는 64년 모스크바大 아시아.아프리카 연구소에서 법률과 아시아연구 학위를 받아 졸업했다.이곳은 舊소련의 KGB(국가안보위원회)요원을 양성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후 터키등 여러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이러한 특권을 누린 것은 그가 KGB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의 근거가 되고 있다.KGB가 그의 배후일 것이라는 증언은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아나톨리 소브차크 페테르부르크 시장은『지리노프스키는 공산당 권력독점을 폐지한 89년의 舊소련헌법에 따라 구상된 非공산계 정당의 지도자로 KGB에 의해 선택된 인물』이라고 폭로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舊소련대통령도『지리노프스키조직이 KGB내부에서 배태됐다는 정보를 입수한적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리노프스키는 이 사실들에 대해 극력 부인하고 있다.
그는 90년 3월 소련의 공산체제가 붕괴하기전 자유민주당 창당자로 정계에 모습을 나타냈다.그는 민주주의와 법치,시장경제를주장했으나 공산주의에 대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그의 정당은 舊소련지역의 민족주의 운동을 분쇄하는데 적극지원했 으며 그곳의 소수 러시아인을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舊유고사태에 대처하는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지나치게 親서방적이라는 이유로 그는 자신이 직접 용병을 모집,세르비아에 파병하기도 했으며 걸프戰 때에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항의한다며 사담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지지했다.
91년 6월 러시아대통령 선거에서는 보트카값을 절반으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해 유권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등 그의 특이한 수사법은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美.러 정상회담차 모스크바를 방문한 빌 클린턴 美대통령이 자신과의 만남을 기피하자 그를『겁쟁이』라 비난하고『집에서 색서폰이나 불라』고 할 정도로 입이 거친 괴짜 카리스마다.
〈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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