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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까지 간 부모부양(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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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들 부부와의 불화로 별거중인 노모에게 아들이 부양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가를 따지기 이전에 부모와 자식이 부양비를 놓고 소송을 벌여야 하는 현실에 우선 착잡함을 느낀다. 노부모를 봉양한다는 것은 법이전에 당연한 자식된 도리인 것으로 알고 우리들은 살아왔다. 이러한 도덕률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이 사회의 지배적인 윤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보면 그런 도덕률,그런 윤리도 점차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윤리와 도덕,법과 제도의 범주가 다른 것이긴 하지만 그를 구분할 절대적 기준은 없는 것이어서 구체적인 사건을 놓고 어느 쪽이 옳은 행위인가를 판단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소송을 낼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그 지경에까지 오게 한 자식의 불효에 대해 분노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내용의 것이든 부모와 자식간의 소송과 같은 친족간의 법적 분쟁이 증가하는 사회는 혼란되고 병든 사회라는 점이다. 법원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부양비 청구소송을 낸 사건이 이번에 판결난 사건만은 아니다. 서울가정법원에만 3건이 더 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핵가족화,가치관의 급속한 변모에 비추어 이런 류의 소송은 앞으로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뿌리에 관련된 문제인 만큼 사회적으로도,개인차원에서도 이에 대해선 심도있는 성찰과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노후에 대한 사회보장책 마련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사회발전 수준에 비추어서도 이 부분이 너무도 뒤떨어져 있다. 노후를 전적으로 사회가 책임지는 식의 사회보장방식은 그 비용도 막대할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교훈을 많은 선진사회들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부모와 자식간의 인륜적 유대를 튼튼히 유지해 나가면서 이에 더해 사회가 상당부분을 메워주는 한국적 노후보장제도 마련이 바람직한 제도개선의 방향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이제는 사회의 가치관이 변한 만큼 젊을 때 자식에게 무조건 희생하고 노후에는 부양받는 것을 당연시하는 전통적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희생은 자식의 독립성을 키워주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이제는 자식을 위해서도,자신의 노후를 위해서도 전통적인 「희생」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니면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세월이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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