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 오른 대학의 학생선발권/김종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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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학의 「선발자율권」은 어디까지 인정될까.
이화여대가 미달사태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저조한 78명을 불합격처리한데 이어 부산대 등도 미달학과의 일부 학생들을 탈락시킬 움직임을 보여 선발자율권을 둘러싼 논란이 분분하다.
사상 초유인 이번 사태에 있어 대학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눈치·배짱지원의 폐단은 사라져야 하고,아무리 미달이어도 수학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뽑지 않는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학부모·수험생들은 『어차피 미달인데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기준이 도대체 무엇이며,수학능력이 있고 없는지는 학교에 다녀봐야 알게 아니냐』고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기세다.
양측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어 한편의 주장에 쉽사리 동조하기 어렵다. 입시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도 당연하고,대학이 인생전체를 결정짓는 것처럼 여겨져온 풍토에서 『미달인데…』라는 수험생·학부모의 항변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사리 답을 찾기 어려울 때에는 원칙으로 되돌아가는게 순리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교육풍토가 다른 외국의 사례는 그대로의 적용은 어렵지만 참고는 가능할 것이다.
미국 교포사회에선 우수한 성적으로 하버드의대를 지원했다 떨어진 교포학생 얘기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성적은 좋지만 고교때 아무런 서클활동도 안했으니 인격형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의대를 지원하고도 헌혈 한번 안했으니 의사로서 적격이 아니다』는게 불합격의 이유였다. 우리로선 상상이 안가지만 미국에선 누가 봐도 정당한 탈락사유다.
영국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학은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고교때의 생활기록부가 엉망이면 입학이 불가능하다. 「공부벌레가 아니라 공부할 자격을 갖춘 인격체를 요구하기 때문」이란게 대학측 논리다.
세계 각국의 교육제도를 살펴보면 학생선발은 전적으로 대학의 권리다. 기부금을 받고 뽑든,고교때의 생활기록부만을 보든,아니면 본고사를 치르든,우리의 수능같은 시험을 통해 선발하든 모든게 대학에 일임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대가 선발자율권을 내세운 것은 원칙적으론 당연한 주장이다. 하지만 그런 조치가 대학은 객관식 시험을 치러 성적순으로 뽑는 거라고 생각해온 우리의 학부모·수험생들에게 줄 충격과 당장 받게 될 피해를 보상하진 못한다. 어쩌면 대학과 수험생들 모두가 뒤틀어졌던 우리 교육의 피해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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