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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이젠그만>3.쉼표 빠졌다고 서류 퇴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전세금 2백만원을 융자받는데 필요한 인감증명을 떼기위해 최근동사무소를 찾은 영세민 崔모씨(35.여.인천시)는 까다롭고 복잡한 절차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市가 저소득 서민을 위해 마련한 전.월세금 융자는 알고보니 이사갈 집 주인의 재정보증과 인감증명을 요구하고 더구나 주인이함께 와 보증서고 서명날인까지 해야했기 때문이다.
친형제간에도 보증이라면 꺼리는 판에 집주인이 귀찮은 일에 쉽게 응할지도 의문이고 도대체 전세금을 빌리는데 왜 주인의 보증이 필요한가 수긍이 가지않았다.
『이 제도는 어려운 영세민을 돕자는 취지보다 관청이 이런 제도를 마련했다고 생색내는데 더 비중을 둔듯했다』는 것이 崔씨의주장이다.
주부 K씨(서울강남구청담동)는 지난해 12월 8일 남편명의로구입한 승용차 등록에 필요한 인감을 떼기위해 동사무소에 갔다가낭패를 당했다.
K씨가 남편의 위임장을 내밀자 동직원은 대뜸『왜 본인이 안오고 당신이 왔느냐』고 물었다.『남편이 해외출장중이어서 대신왔다』는 대답에 동직원은『인감증명을 떼어줄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동직원의 설명인즉 현행법상 본인이 해외에 있을 경 우 현지 공관이 발행하는 확인증이 없으면 인감발급을 해주지 못하도록 돼있다는 것이다.
K씨는 남편의 해외출장 사실을 솔직하게 말한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남편이 중동지역에 단기출장중이고 설혹 공관의 확인증을 뗀다하더라도 비행기로 부쳐오는 시간이 오래걸려 과태료를 물게된다』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동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해외출장사실을 알았기때문에 더 떼어줄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 동직원이「金科玉條」로 내세운 법조문은 그동안 하도 민원이 많이 발생해 올해부터 해외교포에만 적용되고 국내인에게는 폐지토록 개정작업을 벌여 마무리단계에 와 있던 사안이었다. K부인은『인감 용도란에「차량등록용」으로 기재돼 있고 등록기간 10일이 지나면 매일 1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되는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채 낡은 법조항에 얽매여 옴쭉달싹 않는 동직원을 업무에 충실한 원칙주의자로 칭찬해야할지,혹은 꽁 꽁 얼어붙은 경직성을 욕해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않았다』고 씁쓸해했다. 시민들을 짜증나고 번거롭게 하는 것은 불합리한 규제 그 자체 못지않게 운용하는 공무원들의 경직성이다.
주택건설 인.허가 업무로 서울 S구청에 출입이 잦은 H건설 趙모대리(31)는 자신이 구청 직원인지 민원인인지 구분이 가지않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다고 불만이다.
『사업승인신청서.경관심의서등 건축관련서류에 구청장 명의의 결재란까지 만들어 올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서류가운데 쉼표가 없거나 誤字라도 발견되면 서류전체를 다시 작성해 오라며 되돌려 보내기 일쑤입니다.』 정부의 司正이 강화되면서 시민들의 생활을편하게 하고 행정의 대민서비스를 극대화한다는 규제완화의 참뜻과는 달리 공직사회는 오히려「법대로」풍조로 얼어붙어 민원처리가 더욱 빡빡해지고 융통성이 없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차라리 돈 받고 일이라도 제대로 처리해 주었으면』하는 민원인들의 푸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延世大 金永勳교수(행정학)는『국민들이 개혁을 실감하지 못하는것은 행정규제 완화가 시민의 일상생활에 편의를 높이는 것으로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라며『너무 옥죄었던 절차를 푸는 것과 함께 민원인들에게 군림하려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고 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金石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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